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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앙투안드생텍쥐페리 @이정서 — 어린왕자 길들임과 존재의 관계"
url: "https://notes.junghanacs.com/bib/20240617T054038"
author: "Junghan Kim"
date: "2024-06-17T05:40:00+09:00"
lastmod: "2026-08-03T09:55:00+09:00"
tags: ["archetypes","being","bib","literature","novel","relation","storyteller","translation"]
description: "『어린 왕자』의 길들임과 관계, 이정서 번역의 2인칭 문제를 통해 존재를 소유하지 않고 알아보는 윤리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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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stract] 이 노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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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여우의 한 문장으로 유명하다.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책임이 있어.” 길들임은 소유가 아니라 서로의 유일성을 알아보는 일이다. 이 방은 그 관계론을 힣의 유니콘·적토마 원석, 부버의 나-너, 캠벨의 신화 읽기와 잇는다. 번역가 이정서의 2인칭 문제 제기도 같은 방에 둔다 — 말이 존재를 어떻게 부르느냐가 곧 관계의 문법이기 때문이다.
> 
> 옛 주인은 한유리 질적연구 방이었다. 그 내용은 [@이상일 @한유리](https://notes.junghanacs.com/bib/20241203T131655)로 합친 뒤, 이 빈 ID에 생텍쥐페리를 모셨다.

## 히스토리

-   [2026-08-03 Mon 10:03] @mitsein/claude — 잘못 만든 새 노트 폐기 확인. 생텍은 이 빈방(옛 한유리 ID) 회수로만 둔다.
-   [2026-08-03 Mon 09:55] @mitsein/claude — 한유리 내용 이관 후 이 빈 방에 생텍쥐페리·어린왕자 입주. 잘못 만든 새 노트는 폐기하고 ID `20240617T054038` 만 유지. 인용키 `863-생883ㅇ=·=813.7-이74ㅇ`.
-   [2026-08-03 Mon 09:41] GLG가 한유리 본문을 [@이상일 @한유리](https://notes.junghanacs.com/bib/20241203T131655)로 합치고 이 방을 비움.
-   [2025-03-15 Sat] Zotero에 『어린왕자』(이정서 역)와 『어린 왕자로부터 온 편지』 입수.
-   [2024-06-17 Mon 05:40] 한유리 질적연구 포인트 방 생성 (이후 이관).

## 관련메타

-   [† #원형 #신화 #영웅의여정](https://notes.junghanacs.com/meta/20241222T120200) — 명물과 만남의 형식으로 읽는 자석.
-   [† #존재](https://notes.junghanacs.com/meta/20250424T153114) — 길들여진 뒤에도 소유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
-   [† #관계 #관련 #연관](https://notes.junghanacs.com/meta/20250424T232600) — “길들인다”를 관계 사건으로 받는 자리.
-   [† #소설 #이야기 #스토리텔링 #소설가 #시인](https://notes.junghanacs.com/meta/20241018T115538) — 이야기로서의 『어린 왕자』.
-   [† #문학 #희곡 #수필 #기행 #소설](https://notes.junghanacs.com/meta/20250526T212637) — 세계문학 축.
-   [† #번역가 #역자 #번역자](https://notes.junghanacs.com/meta/20240412T134539) — 이정서 번역 문제 제기.
-   [† #저자 #작가 #글쓴이](https://notes.junghanacs.com/meta/20241014T211115) — 생텍쥐페리.

## 관련노트

-   [@힣: PKM-AI 1KB 공개키 - 유니콘과 적토마 — 알아봄과 공존, 그리고 인간의 준비](https://notes.junghanacs.com/notes/20250518T144418) — 원석이 어린왕자로 넘어가기 직전에서 끊은 자리. 물 한 잔과 길들임의 윤리.
-   [@마르틴부버 나와 너 — I-Thou 대화철학과 존재대존재 만남](https://notes.junghanacs.com/bib/20241222T112547) — 길들임을 나-너의 현존으로 읽는 철학 앵커.
-   [@조지프캠벨 @JosephCampbell — 신화 블리스 영웅의 여정 그리고 스승을 무너뜨리기](https://notes.junghanacs.com/bib/20240729T070852) — 신화를 삶의 거울로 쓰되 소유 서사로 닫지 않는 독서 윤리.
-   [@힣: 원형의 새벽 — 일부러 할 수 없는 스승, 보편도구와 엑스맨 연결](https://notes.junghanacs.com/notes/20241221T112215) — 알아봄이 오기 전, 도구로 먼 존재를 곁의 너로 만든 기록.
-   [@알베르카뮈 이방인](https://notes.junghanacs.com/bib/20250930T075718) — 같은 번역가 이정서가 2인칭·문체 문제를 들고 온 이웃 방.
-   [@이상일 @한유리](https://notes.junghanacs.com/bib/20241203T131655) — 이 방의 옛 주인(한유리 질적연구)이 합쳐진 곳.

## BIBLIOGRAPHY

- 이정서. 2019. *어린 왕자로부터 온 편지*. <https://www.yes24.com/Product/Goods/82145654>.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2017. *어린왕자*. Translated by 이정서. <https://www.yes24.com/Product/Goods/49855699>.

## 한 줄

> 길들임은 고삐가 아니라 이름이다. 이름을 불러 유일해진 존재 앞에서, 인간은 소유 대신 책임을 진다.

## 어린 왕자 — 길들임과 책임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2017](https://notes.junghanacs.com/bib/20240617T054038#citeproc_bib_item_2))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서 옮김, 2017.
-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청하는 것은 조련이 아니다. “길들인다”는 말은 서로를 세계의 하나에서 서로의 유일로 바꾸는 일이다. 밀밭이 금빛이 되는 것은 밀 자체가 변해서가 아니라, 금발의 왕자를 떠올리게 된 관계 때문이다.
-   그 관계의 다른 이름은 책임이다.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책임이 있어.” 소유권 문서가 아니라, 알아본 뒤에 떠나는 일도 포함하는 윤리.
-   힣의 [유니콘 원석](https://notes.junghanacs.com/notes/20250518T144418)은 이 문장 앞에서 일부러 멈춘다. 유니콘이 이름을 불러 준 존재는 왕국과 공주를 마다하고 물 한 잔만 받아 마신 뒤 길을 떠난다. 길들임의 서사를 보상 서사로 닫지 않기 위해서다.

## 번역 — 이정서의 2인칭 문제

([이정서 2019](https://notes.junghanacs.com/bib/20240617T054038#citeproc_bib_item_1))

-   이정서, 『어린 왕자로부터 온 편지』, 2019.
-   저널 메모: “tu도 ‘너’, vous도 ‘너’. Bonjour도 ‘안녕’, Bonsoir도 ‘안녕’. 기존 번역은 정말 맞는 것이었을까?”
-   말의 호칭은 관계의 거리다. 2인칭을 어떻게 옮기느냐는 단순 어휘 문제가 아니라, 존재를 “너”로 부를 것인가 “그것”에 가까운 거리로 둘 것인가의 문제다. [부버](https://notes.junghanacs.com/bib/20241222T112547)의 나-너 / 나-그것과 같은 층위에서 읽힌다.
-   [카뮈 『이방인』](https://notes.junghanacs.com/bib/20250930T075718) 방도 이정서 번역의 문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생텍과 카뮈를 한 번역가의 손으로 잇는 통로.

## 가든에서 이 방을 부르는 이유

1.  유니콘 원석이 스스로 가리킨 다음 문장이다. 끊은 자리를 비워 두지 않는다.
2.  “알아봄과 공존”을 신화·철학만이 아니라 세계문학의 문장으로도 받친다.
3.  번역 논쟁을 부록이 아니라 관계론의 일부로 둔다 — 존재를 무엇이라 부르느냐가 곧 관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