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철학 입문 : 서론
이 책의 목표는 정보란 무엇이고 그것의 다중적 본성은 무엇이며, 여러 가지 과학적 맥락에서 정보가 수행하는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점점 커지는 정보의 중요성이 불러오는 사회적 ‧ 윤리적 쟁점들은 어떠한 것들인지 그 윤곽을 제공하는 것이다. 윤곽을 그리는 작업은 필시 선별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이 책은 ‘아주 짧지도’ 않고 그냥 ‘입문서’로 끝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마주하는 엄청나게 다양한 정보 현상, 그리고 그런 현상의 심원하고도 근본적인 중요성을 이해하는 데, 또 그럼으로써 우리가 사는 이 정보 사회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정보는 많은 형태로 접하게 되고 또한 그 의미도 여러 가지라고 말들이 많다. 어떤 관점을 채택하고 어떤 필요조건과 요구조항을 염두에 두느냐에 따라 정보는 여러 가지 설명과 결합할 수 있다. 이를테면, 정보 이론의 아버지인 클로드 섀넌 Claude Shannon (1916~2001)은 매우 신중했다.
일반적인 정보 이론 분야에서 다양한 저술가들이 ‘정보’라는 단어에 제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하였다. 아마도 적어도 그중 많은 의미는 특정한 적용 사례들에서 충분히 유용성이 입증되어 추가적인 연구와 상시적인 인정을 받을 자격이 될 것이다. 단 하나의 정보 개념이 이 전반적인 분야에서 가능한 수많은 적용 사례들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강조는 인용자)
실제로, 기계 번역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서 섀넌과 함께 《수학적 커뮤니케이션 이론 The Mathe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을 공동 집필한 워렌 위버 Warren Weaver (1894~1978)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정보의 삼각 분석을 지지했다.
- ① 정보 계량화와 관련하여 섀넌의 이론에서 다뤄지는 기술적 문제들.
- ② 의미와 진리에 관계된 의미론적 문제들.
- ③ 인간 행동에 미치는 정보의 파급력과 유효성에 관련된 것으로서, 그가 다른 문제들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 소위 “영향력 있는” 문제들.
정보 분석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가운데 두 가지 초기 사례가 섀넌과 위버의 이론에서 발견된다. 하나는, 서로 다른 과대한 해석 때문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분명히 부질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보 개념 그 자체의 오해와 오용에 대한 불평을 빈번히 표출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정보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주요한 의미들의 지도를 제공하려 한다. 그 지도는 ‘데이터data’ 개념을 근거로 정보에 관해 내놓은 첫 설명을 바탕으로 그려진다. 불행히도 그런 최소한도의 설명조차도 의견 차이를 모면하지 못한다. 지금의 접근법을 옹호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적어도 이 방식이 다른 방식에 비해 논쟁의 여지가 훨씬 적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어디에선가는 개념 분석의 출발점을 잡아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태도를 조사 대상에 대해 모종의 실무적 정의를 채택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이곤 하지만,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런 상투적인 소리가 아니다. 어려움은 훨씬 더 벅차다. 정보 개념에 관한 연구는 아직도 한탄스러운 단계에 있으며, 문제들 자체를 잠정적으로 진술하여 틀에 넣는 방식에조차 의견의 불일치가 영향을 미치는 지경이다. 그 덕에 이 책 곳곳에 “현 위치”를 가리키는 다양한 표지판이 놓여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전체적인 목적은 한 가족을 이루는 정보 개념들을 지도 위에 견고하게 자리 잡게 해줌으로써 추후의 조정과 방향 전환을 가능케 하려는 것이다.
1장 정보 혁명
정보 사회의 등장
역사에는 시기를 구분하는 많은 척도가 있다. 어떤 척도는 계절의 반복과 행성 운동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자연적이고 순환적이다. 어떤 척도는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이거나 선형적인 것으로서, 예를 들면 이어지는 올림픽 대회 개최나, 로마가 세워진 이래로 지나간 햇수 (로마 창건 기원 ab urbe condita)나, 특정 국왕의 등극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 또 다른 척도는 종교적인 성격을 띠는 것들로서 V자 모양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그리스도의 탄생 같은 특정 사건을 전후로 햇수를 세는 것이다. 더 작은 시대를 아우르는 더 큰 시대가 있으며, 그런 시대들은 유력한 양식 (바로크), 사람들 (빅토리아 시대), 특수 상황 (냉전), 신기술 (원자핵 시대) 등에 따라 명명된다. 이 모든 척도와 여기 언급하지 않은 다른 많은 방법의 공통점은, 그것들이 모두 사건들을 기록하는 시스템에 의존하며, 그렇게 해서 과거에 관한 정보를 축적하고 전송한다고 하는 엄격한 의미에서 역사적이라는 것이다. 기록 없이는 역사도 없으며, 선사 시대란 인류 발전 과정에서 아직 기록 체계를 활용할 수 없었던 시대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역사란 실제로 정보 시대와 동의어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류가 적어도 청동기 시대 이래로 다양한 종류의 정보 사회들에서 살아오고 있다고 마땅히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청동기 시대의 특징은 바로 그 시기에 메소포타미아를 비롯해 세계 여러 지역에서 글쓰기가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기원전 4000년경). 그렇지만 정보 혁명이 일반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많은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다른 무엇보다 더 설득력 있어 보이는 설명은,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인간의 진보와 행복이 정보 생명주기의 성공적이고 효율적인 관리에 상당 부분 의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보 생명주기는 일반적으로 다음 국면들을 포함한다. 발생 occurrence (발견, 설계, 저작 등), 전송 transmission (네트워킹, 분배, 접속, 검색, 발송 등), 처리와 관리 processing and management (수집, 확인, 수정, 조직, 색인, 분류, 여과, 갱신, 구분, 저장 등), 그리고 사용 usage (모니터링, 모델링, 분석, 설명, 계획, 예측, 의사결정, 지시, 교육, 학습 등). 그림 1은 이를 단순하게 표현한 도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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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림 1을 시계와 비슷하다고 상상해보라. 정보 생명주기의 진화가 정보 사회를 불러오는 데 걸린 시간 때문에 놀라서는 안 된다. 최근 추산에 따르면 지구상의 생명은 앞으로 10억 년 더 존속하다가 태양의 온도 상승으로 인해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 한다. 그러면 가까운 미래, 이를테면 100만 년 후에 글을 쓰고 있는 역사가를 상상해보라. 그 역사가는 신석기 시대에 시작된 (기원전 10000년경) 농업 혁명이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기까지 대략 6천 년이 걸렸고, 청동기 시대부터 기원후 두 번째 천년이 끝날 무렵까지 또 한 번의 6천 년 세월이 흘러 정보 혁명의 결실을 보게 된 것이 특별할 게 없는 일로서 그저 멋지게 대칭을 이룬다는 정도로 생각할지 모른다. 이 기간에 ICTs, 즉 ‘정보 및 커뮤니케이션 기술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ies’은 단지 기록하는 시스템에서 (쓰기와 사본의 제작) 특히 구텐베르크Gutenberg (1398?~1468)가 인쇄술을 발명한 이후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으로 진화하였고, 특히 앨런 튜링 Alan Turing (1912 ~1954)에 힘입어 컴퓨터가 보급된 뒤로는 처리와 생산 시스템으로까지 한층 더 진화하였다. 이런 진화 덕분에 오늘날 가장 선진적인 사회들은 정보 기반 무형 자산, 정보 집약적 서비스 (특히 사업과 부동산 서비스, 금융과 보험, 오락), 정보 지향적 공공 부문 (특히, 교육, 공공행정, 공중보건)에 크게 의존한다. 예를 들면,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영국, 미국 등 모든 G7 회원국은 정보 사회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이들 나라는 모두 농업이나 제조업 과정에서 나온 물리적 생산물에 해당하는 유형의 재화가 아닌 정보 관련 무형의 재화에 적어도 GDP (국내총생산)의 70%가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들의 기능과 성장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 전 역사에 걸쳐 인류가 지금껏 보아온 것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요구하고 또 생산한다.
제타바이트 시대
2003년에 버클리의 정보 경영 시스템 전문대학원의 연구자들은 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전까지 인류가 역사의 전 과정을 통해 대략 12엑사바이트 exabyte의 데이터를 축적했다고 추산했다 (1엑사바이트는 1,018바이트 즉 DVD 화질의 영상물 5만 년 치에 해당한다). 하지만 또한 그들은 2002년 한 해에만 인쇄물, 영상물, 자기 및 광학 저장 매체가 벌써 5엑사바이트 이상의 데이터를 생산했다고 계산했다. 이것은 미국의회도서관 규모의 새로운 도서관 3만 7천 개가 생겨난 것에 맞먹는다. 2002년의 세계 인구 규모를 놓고 볼 때, 거의 1인당 800메가바이트 megabyte, MB의 기록된 데이터가 생산된 셈이었다. 이것은 갓난아기가 태어날 때 800MB의 데이터를 종이에 인쇄했을 때의 분량에 해당하는 약 9m 두께의 책을 짊어지고 세상에 나왔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데이터 중 92%가 자기 매체 magnetic media에 저장되었으며 (대부분 하드디스크다), 이로써 전례 없는 정보 “민주화”를 유발했다. 즉,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데이터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그런 기하급수적 급증은 가차 없이 이뤄지고 있다. 더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2006년과 2010년 사이에 전 세계 디지털 데이터의 양은 161엑사바이트에서 988엑사바이트로, 즉 여섯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 한다. 세계를 덮치고 있는 이런 바이트의 쓰나미를 묘사하기 위해 ‘엑사홍수 exaflood’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였다. 물론 그런 엑사홍수에 떠내려가지 않고 물살을 헤쳐나가기 위해 수십 억 대의 계산 기계들이 계속 돌아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수치는 예견 가능한 미래에도 계속 꾸준히 증가할 것이며, 그렇게 되는 데에는 컴퓨터가 후속 엑사바이트의 최대 공급원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컴퓨터 덕분에 우리는 제타바이트 zettabyte (1,000엑사바이트) 시대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이것은 자기강화의 순환이며, 이에 압도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터이다. 그것은 혼재된 감정이다. 아니, 적어도 그런 감정이어야 한다.
오늘날 ICT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에 걸쳐 세계를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심원하게 변화시켜 오고 있다. 변화의 폭은 놀라우리만치 크고 그 속도는 무시무시하다. 한편으로 ICT는 엄청난 경제적 ‧ 과학적 이점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교육, 복지, 번영, 계발에 엄청난 이득이 될 현실적인 절박한 기회들을 가져다주었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미국 상무부와 국립과학재단은 ‘NBIC’, 즉 나노기술 Nanotechnology, 생물공학 Biotechnology, 정보기술 Information Technology, 인지과학 Cognitive Science을 국가 차원의 우선성을 갖는 연구 영역으로 인정했다. 세 영역 N, B, C는 I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리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EU도 이에 필적하는 움직임을 보이며 ICT의 거대한 파급력을 인정하였다. EU의 국가 정부 수반들은 EU를 ‘2010년까지 가장 경쟁력 있고 역동적인 지식 주도 경제’로 만들기로 합의한 것이다.
반면, ICT는 또한 중대한 위험들도 지니고 있다. ICT는 실재 reality의 본성 및 그에 대한 우리의 지식, 전자정보기반과학 e-science, 공정 사회 형성 (디지털 양극화를 생각해보라), 현재와 미래 세대에 대한 우리의 책임과 의무, 세계화된 세상에 대한 이해, 우리가 환경과 나눌 수 있는 잠재적 상호작용의 범위 등에 관하여 깊은 의문과 딜레마를 불러일으킨다. 결과적으로 ICT는 우리가 그것의 본성과 함의를 이해하는 속도를 훨씬 앞질러 나갔으며, 그러는 사이에 그로 인해 생겨난 문제들의 복잡성과 전 지구적 규모가 급속도로 확장되고 진전되어 점점 더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간단한 비유가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보 사회는 자신의 개념적 ‧ 윤리적 ‧ 문화적 뿌리에 견주어볼 때 대단히 광범위하고, 조급하고, 무질서하게 아주 멀리까지 가지들을 뻗치며 자라나고 있는 나무와 비슷하다. 수백만 시민이 일상의 삶에서 경험할 정도로 그 균형의 상실은 명백한 상황이다. 간단한 일례로, 개인정보 도용을 생각해보라. 이것은 돈을 훔치거나 여타 이득을 얻기 위해 정보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으로 둔갑하려는 것이다. 미 연방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개인정보 도용과 관련된 사기 손해 액수가 미국에서 2002년 한 해에만 약 526억 달러에 달했으며 거의 천만 명의 미국인이 피해를 봤다고 한다. 뿌리가 허약한 나무가 그렇듯, 하층부의 허약한 토대 때문에 상층부가 손상을 입어 더 크고 건강하게 자라나지 못할 위험이 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모든 선진 정보 사회는 실행 가능한 정보 철학을 갖추어야 한다는 시급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앞의 비유를 적용하자면, 기술이 위를 향해 계속 자라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정보 시대 및 그 시대의 본성,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함축들, 인간과 환경의 복지에 미칠 파급력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확장하고 강고히 하기 위해 아래로 더 깊게 땅을 파고들기 시작할 적기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난점을 예견하고, 기회를 확인하고, 문제를 해결할 승산을 스스로 얻게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수천 년간의 잉태 기간이 지난 후, 거의 돌연하다고 할 전 지구적인 정보 사회의 분출은 새롭고 분열적인 과제들을 생성했다. 그것들은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크게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다. ‘과학과 신기술의 윤리에 관한 유럽 그룹 the European Group on Ethics in Science and New Technologies’, 그리고 ‘유네스코 정보 사회 관측소 the UNESCO Observatory on the Information Society’가 잘 제시한 바대로, ICT는 정보와 커뮤니케이션과 계산 자원의 창조, 관리, 활용을 지극히 중요한 쟁점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단지 세계 및 세계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기평가와 정체성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다른 말로 하면, 컴퓨터과학과 ICT는 제4차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제4차 혁명
과도하게 단순화하자면, 과학이 우리의 이해를 바꾸는 데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방식이 있다. 하나는 외향적이라 불리는 것으로서 곧 세계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향적인 것으로 곧 우리 자신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 차례의 과학 혁명은 외향적으로나 내향적으로나 거대한 파급효과를 불러왔다. 그 혁명들은 바깥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꾸면서, 또한 우리가 누구인가에 관한 우리의 생각도 수정했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Nicolaus Copernicus (1473~1543) 이후에, 태양 중심의 우주론이 이전까지 우주의 중심에 자리했던 지구를 몰아냈고 그 바람에 인간 역시 같은 신세가 되었다. 찰스 다윈 Charles Darwin (1809~1882)은 모든 생명체 종이 공통 조상에서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했음을 보여주었고, 그럼으로써 생명체 왕국의 중심에 자리했던 인간을 추방했다. 그리고 지크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1939)의 인도 아래,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또한 무의식적이며 억압의 방어 기제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주의 중심에 붙박이로 자리 잡고 있지 않으며 (코페르니쿠스 혁명), 부자연스럽게 나머지 동물의 왕국과 동떨어진 채 별종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다윈 혁명), 또한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1650) 같은 철학자가 당연시했던 바와는 달리 자기 자신에게 완전히 투명하게 드러나는 독립적인 마음을 가진 것도 전혀 아니다 (프로이트 혁명).
인류사의 전개에 대한 이런 고전적 해석의 가치에 쉽게 의문을 제기해볼 수도 있다. 결국 이 세 혁명을 인간 본성이 재평가되어 온 단일한 과정으로 해석한 최초의 인물이 바로 프로이트였으니, 그의 시각은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는 빤한 잇속 차리기였다고 말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를 인지과학이나 신경과학으로 대체해보라. 그렇게 해도 최근에 인간의 자기 이해에 관하여 무언가 매우 의미심장하고 심오한 사태가 벌어졌다는 우리의 직관을 설명하기에 유용한 개념 틀을 여전히 발견할 수 있다. 1950년대 이래로 컴퓨터과학과 ICT는 안팎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그러면서 우리가 세계와 맺는 상호작용뿐 아니라 우리의 자기 이해도 변화시켰다. 많은 측면에서 우리는 독립적인 존재자라기보다 상호 연결된 정보적 유기체, 즉 인포그 inforg로서, 생물학적 행위자들 및 공학적 인공물들과 함께 궁극적으로 정보로 이루어진 총체적 환경, 즉 인포스피어 inforsphere, 情報圈를 공유한다. 인포스피어는 모든 정보 처리 과정들, 서비스들, 존재자들로 형성된 정보적 환경으로서, 그 안에는 정보 행위자들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속성, 상호작용, 상호관계가 모두 포함된다. 만약 제4차 혁명을 대표하는 과학자가 한 명 필요하다면, 그 사람은 확실히 앨런 튜링이 되어야 한다.
인포그를 공상과학 소설에서 묘사하는 ‘사이보그화된’ 인간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몸에 블루투스 무선 헤드셋을 이식하고 생활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행동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특히 그런 행동이, 그 장치가 전송 중이라 여겨지는 또 다른 사회적 메시지, 즉 ‘상시 대기 상태로 사는 것은 일종의 노예 상태이며 그렇게 바쁘고 중요한 사람이라면 그러지 말고 개인 비서를 두어라’라는 메시지와 상반되기 때문이다. 모종의 사이보그가 된다는 것은 기꺼이 환영할 일이 아니라 되도록 피하고자 노력할 일이다. 인포그라는 발상이 유전적으로 개조된 인간으로 나아가는 디딤판으로서 인간의 정보적 DNA에 관여하고, 그리하여 다가올 미래에 그런 인간의 체현을 담당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일이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단계에서 진지하게 논의하기에는 기술적으로나 (안전하게 실행할 수 있을지)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 아직은 가야 할 길이 한참 멀다. 오히려 제4차 혁명은 인간 행위자의 고유한 정보적 본성을 조명해주고 있다. 이것은 단지 사람들 개개인이 ‘데이터 그림자 data shadow’ 1를 남기기 시작했다거나, 혹은 사람들이 저마다 이메일, 블로그, 홈페이지 주소 등에서 ‘하이드 씨’와도 같은 대안적 디지털 자아를 내세우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을 넘어서는 문제다. 뚜렷이 눈에 띄는 이런 사실들은 오히려 디지털 ICT를 단지 증강 기술로 착각하게끔 조장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행위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새로운 행위자가 어떤 종류의 환경에 거주하게 될 것인지에 관한 우리의 이해 속에서 벌어진, 더 조용하고 그리 원색적이지 않으면서도 결정적이고 심원한 변화이다. 그것은 우리 몸의 어떤 기발한 개조나 우리의 포스트휴먼적 조건에 관한 어떤 공상과학적 사변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아니라, 실재와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의 급진적 변환을 통해 훨씬 더 진지하고 실감 나게 벌어지고 있는 변화이다. 이를 설명하는 좋은 방법은 향상 enhancing 장비와 증강 augmenting 장비의 구분에 호소하는 것이다.
1 신용카드, 휴대전화, 인터넷 등을 사용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생겨나는 추적 가능한 정보를 가리킨다.
인공심박조율기나 안경이나 인공 수족 같은 향상 장비는 해당 장비를 사용자의 몸에 인간공학적으로 부착시켜줄 인터페이스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사이보그 발상의 시작이다. 증강 장비는 대신에 서로 다른 가능세계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갖는다. 예를 들면, 한 측면에 인간 사용자의 일상적 거주지인 바깥세계, 즉 현실이 존재하며 그 현실은 거기에 거주하는 행위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다른 한 측면에 역동적이고, 축축하고, 미끄럽고, 뜨겁고, 어두컴컴한 식기세척기의 세계가 있다. 똑같이 축축하고, 미끄럽고, 뜨겁고, 어둡지만, 빙빙 돌아가기도 하는 세탁기의 세계도 있다. 혹은 조용하고, 썩지 않고, 세제를 쓰지 않고, 차갑고, 환히 빛을 발할 때가 있는 냉장고의 세계가 있다. 이런 로봇들은 그들의 환경을 그들 능력에 맞게 ‘몸에 두르고’ 재단한 덕분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반대 방향으로는 아니다. 인간 행위자와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설거지를 하게 하기 위해〈스타워즈〉의 C3PO 같은 드로이드를 제작하려는 것이 어리석은 발상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ICT는 방금 설명한 의미에서 향상하거나 증강하지 않는다. ICT는 장치들을 급진적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ICT는 사용자가 일종의 신고식을 치르면서 게이트웨이 ...
Life in the infosphere
2장 정보의 언어
3장 수학적 정보
4장 의미론적 정보
5장 물리적 정보
6장 생물학적 정보
7장 경제적 정보
8장 정보의 윤리
에필로그: 피시스와 테크네의 결혼
참고문헌
해제: 플로리디의 제일철학으로서 정보철학 - 신상규
신상규 :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교수, 포스트휴먼 융합인문학 협동과정 주임교수
- 하이퍼히스토리 시대
- 정보 : 철학
- 루치아노 플로리디 -> 지도 교수 논리학의 대가 수전 하크
- 박사후과정 지도 교수 마이클 더밋 : 옥스포드 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