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erences
루이스 캐럴. 1832. “루이스 캐럴 Lewis Carroll.” In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A3%A8%EC%9D%B4%EC%8A%A4_%EC%BA%90%EB%9F%B4&oldid=37876780.
루이스캐럴
@user 루이스캐럴을 소개해줘.
@assistant 루이스 캐럴(Charles Lutwidge Dodgson, 1832-1898)은 영국의 수학자, 논리학자, 사진작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명한 어린이 문학 작가입니다. 그는 앨리스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 앨리스의 모험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1865)
- 거울 나라의 앨리스 (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 1871)
이 작품들은 환상적이고 논리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여,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 독자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캐럴은 옥스퍼드 대학의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에서 수학을 가르쳤으며, 그의 수학적 배경은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논리 퍼즐과 수학적 개념들이 그의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그는 또한 사진작가로서도 활동했으며, 특히 어린이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반영하며, 독창적인 상상력과 언어유희로 유명합니다.
@user
루이스 캐럴 Lewis Carroll
(루이스 캐럴 1832)
옥스퍼드 대학교 수학과 졸업 옥스퍼드 대학교 수학과 교수
- 루이스 캐럴
- 찰스 럿위지 도지슨(영어: Charles Lutwidge Dodgson, 1832년 1월 27일\textasciitilde 1898년 1월 14일)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이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 작가, 수학자, 사진사, 영국 성공회의 부제(deacon)이다. 대표작으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와 그 후속작 『거울 나라의 앨리스』(1871)가 있다. 언어유희, 논리, 환상 문학에 능했던 것으로 평가되며, 그의 시 「재버워키」(1871)와 「스나크 사냥」(1876)은 문학적 비상식 장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분류된다. 캐럴은 고교회파 성공회 집안 출신으로,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성직자 교육을 받았다. 그는 평생을 학자, 교사, 성공회 부제(副祭)로서 옥스퍼드에서 살았다. 헨리 리델 크라이스트 처치 학장의 딸인 앨리스 리델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주인공의 모델로 알려져있지만, 작가 본인은 이를 평생동안 부정했다. 열정적인 퍼즐 애호가였던 캐럴은 "워드 래더(word ladder)" 퍼즐을 고안했는데, 그는 이를 "더블릿(Doublets)"이라 불렀으며 1879년부터 1881년까지 베니티 페어(Vanity Fair) 잡지의 주간 칼럼에 이를 연재했다. 1982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들의 코너(Poets’ Corner)에 캐럴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전 세계에 그의 작품을 즐기고 홍보하는 데 전념하는 여러 모임이 있다.
-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동화작가로 자리매김한 루이스 캐럴의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전 세계적인 동화작가 된 루이스 캐롤은 1832년 1월 27일 영국 체셔 지방의 유복하지만 엄격한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공회의 지역 교구 주임 사제였던 아버지 때문에 16년 동안 사제 사택에서 생활했다. 어린 시절부터 말장난, 체스 게임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사립학교인 리치먼드 스쿨과 럭비 스쿨을 졸업한 뒤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열일곱 살 때 백일해를 앓으면서 오른쪽 귀에 이상이 생겼으며 이후 말을 더듬게 되었다. 1851년 옥스퍼드대학교의 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에 입학했고 1855년부터 1881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으나 말을 심하게 더듬은 탓에 그리 인기 있는 강사라 할 수는 없었다. 말을 더듬는 버릇과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유일하게 아이들과 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가족들을 위한 잡지를 발행하는 등 창작과 편집에 소질을 보여, 1856년부터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림에 관심이 많아 여덞명의 어린 동생들을 위해 직접 삽화를 그린 잡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림에 대한 관심은 이후 사진으로 옮겨갔고, 1856년 카메라를 산 캐럴은 주로 여자 아이들 사진을 찍으며 24년간 사진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실제로 캐럴은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특히 크라이스트처치대학 학장의 세 딸과 친하게 지냈고, 그중 각별했던 둘째 앨리스 리델을 위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썼다. 템스강에서 함께 피크닉을 갔던 열살 난 앨리스 리덜과 자매들(단과대 학장의 세 딸)에게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탄생했다. 바로 그 이야기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의 줄거리였던 것이다. 이 책은 『지하 세계의 앨리스』라는 이름의 자필로 쓴 이야기 책이었으나 후에 맥밀런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로 하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제목이 변경되었다.
순종과 도덕을 가르치는 기존 동화와는 달리, 주인공이 신기하고 허무맹랑한 캐릭터들과 만나 모험을 하는 파격적인 동화였다. 1865년 출판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가 됐다. 그 기발한 상상력 때문에 환상문학의 효시가 된다. 하지만 생전 그는 자신이 세계적 베스트 셀러가 된 앨리스의 원작자라는 사실을 밝히기를 거부했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간 루이스 캐럴은 그의 어린소녀에 대한 집착 때문에 소아성애도착증 환자가 아니었는가 논쟁의 대상거리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이 책은 수많은 나라에서 연극,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각색되며 많은 이들의 창조적 영감에 불을 지핀 사랑스러운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외에는 그 속편격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 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1ice Found There』(1871) 등의 유머와 환상이 가득찬 일련의 작품으로써, 근대 아동문학 확립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난센스 문학의 고전이 된 이 두 작품 외에도 장편소설 『실비와 브루노』(전2권, 1889, 1893)를 비롯해, 난센스 시 『요술 환등 외』(1896), 『스나크 사냥』(1876), 『운율 그리고 이성』(1882)을 출간했고 『논리 게임』(1887)과 같은 퍼즐 및 게임에 관한 책들도 여러 권 집필했다.
옥스퍼드 대학 내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어느 옥스퍼드 학생의 기록」(1874)을 비롯한 다양한 풍자 팸플릿을 쓰는가 하면, 『유클리드와 현대의 맞수들』과 『상징 논리』(1896) 같은 논리학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빅토리아 시대 유명 인사들과 아이들을 찍은 사진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아마추어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성직자 서품을 받았지만 1881년 강단에서 물러난 뒤에도 설교단에 서지는 않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1898년 『세 일몰』의 교정쇄와 『상징 논리』의 2부 원고를 마무리하던 중 길포드에서 숨을 거두었고, 조촐한 가족장 후 교회 묘지에 묻혔다. 그의 소설이나 시는 현대의 초현실주의 문학과 부조리문학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간주되며, 넌센스 문학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