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 [2026-03-14 Sat 21:12] 생성. 마의산 오디오북 청취 중 첫 인상 — 으시시하다. 배경지식 전무한 상태에서 접근.
  • [2026-03-14 Sat 21:12] 대화: 토마스만↔헤세↔융↔프로이트↔츠바이크의 삼각관계 정리. 왜 지금 이 책인가.

관련메타

BIBLIOGRAPHY

토마스 만. n.d. 마의 산. Translated by 진형준. Accessed March 14, 2026.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1746884.

관련노트

왜 지금 토마스만인가 — 힣의 메모

[2026-03-14 Sat 21:24]

마의산을 오디오북으로 듣기 시작했다. 배경지식 전혀 없이. 앞부분부터 으시시한 느낌.

스위스 알프스 산 위 결핵 요양원이 배경.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가 사촌 면회를 갔다가 그 공간에 빨려 들어간다. 산 아래 “평지”의 시간과 산 위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릿한 공간 — 일종의 림보(limbo).

왜 지금 이 책인가

마의산이 쓰인 맥락:

  • 1차대전 직후
  • 제국들의 붕괴
  • 민주주의와 파시즘의 충돌 예고
  • 유럽 문명이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 시점

지금과 구조가 같다:

  • 미중 패권 충돌
  • 우크라이나, 중동 전쟁
  • 민주주의의 내부 균열
  • AI라는 새로운 문명적 변수

만이 말하려 한 것: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세계는 — 이미 오래전부터 요양원 안에 있었다.” 병든 줄 모르고 있던 문명이, 전쟁이라는 증상으로 터진 것.

헤세가 내면의 산 을 오르는 법을 알려줬다면, 토마스만은 바깥의 산 — 문명, 역사, 시대 — 을 직시하게 만든다.

토니오 크뢰거 (1903) — 더 끌리는 이유

마의산보다 20년 앞선 중편소설. 토마스 만의 자전적 고백에 가장 가깝다.

핵심 긴장: 예술가인 나 vs.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

토니오는 독일인 아버지 +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 어쏠리즘의 그 감각 — 생존의 일과 진짜 자신의 일 사이에서 느끼는 긴장 — 토니오가 평생 안고 사는 게 그것이다.

마의산은 문명론, 토니오 크뢰거는 존재론.

토마스만 연대기 (1875–1955)

연도사건
1875뤼베크 출생. 북독일 상인 가문. 아버지는 곡물상 — 질서, 시민적 덕목의 세계
1891아버지 사망. 가문 해체. 어머니(브라질계 혼혈)와 뮌헨으로.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가 평생 질문이 됨
1901《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4대에 걸친 상인 가문의 몰락. 자기 가족 이야기
1903《토니오 크뢰거》. 예술가 정체성의 고백
1905결혼. 6남매. 겉으로는 완벽한 시민의 삶
19141차대전. 처음엔 독일 민족주의 지지 → 나중에 평생 부끄러워함
1924《마의산》 출간. 12년 작업. 전쟁 전 유럽의 사망진단서
1929노벨문학상
1933히틀러 집권. 강연 여행 중 독일 탈출. 다시는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
1938미국 망명. 프린스턴 → LA. 할리우드 옆에서 《파우스트 박사》 씀
1947《파우스트 박사》. 악마와 계약한 천재 음악가 = 나치 독일의 알레고리
1952미국 매카시즘 피해 스위스로. 끝까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1955취리히에서 사망. 80세

토마스만 ↔ 헤르만헤세 — 50년 서신 교류

기본 좌표

토마스 만헤르만 헤세
생몰1875–19551877–1962
출신뤼베크, 북독일 상인 가문칼프, 남독일 신학자 가문
망명미국스위스 (1차대전 때 이미)
노벨상19291946

거의 동갑. 그러나 성격은 정반대.

교류의 역사

두 사람은 50년 이상 편지를 주고받았다. 처음 접촉은 1910년대 초.

  • 1차대전 갈라짐: 만은 초기 독일 민족주의 지지, 헤세는 즉각 반전 입장. 헤세가 공개 비판. 만은 훗날 헤세를 “더 일찍 깨달은 사람”으로 존경.
  • 《데미안》(1919): 헤세가 가명(에밀 싱클레어)으로 냈는데 만이 “이건 헤세다”라고 바로 알아봤다는 일화.
  • 《유리알 유희》(1943): 헤세가 만에게 먼저 원고를 보냄. 만의 반응 — “당신은 내가 가지 못한 길을 갔다.”
  • 나치 망명 시절 가장 힘들 때, 헤세는 스위스에서 꾸준히 편지로 정신적 버팀목이 됨.

서로에 대한 평가

만 → 헤세: “헤세는 내면으로 갔다. 나는 바깥을 향해 싸웠다. 둘 다 필요한 일이었다.”

헤세 → 만: “만은 유럽 문명의 가장 정직한 증인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짐을 스스로 졌다.”

문학적 비교

토마스 만헤르만 헤세
핵심 질문문명은 어디로 가는가나는 누구인가
무대사회, 역사, 유럽내면, 자아, 동서양
문체아이러니, 거리두기, 방대한 서사서정적, 고백적, 압축적
영향받은 것쇼펜하우어, 니체, 바그너노자, 불교, 융
독자와의 거리멀다. 관찰자처럼 쓴다가깝다. 독자가 주인공이 된다
죽음의 처리문명의 메타포변환, 윤회, 통과의례

핵심 차이: 만은 세계를 이해하려 했고, 헤세는 자신을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자의 외로움을 평생 썼다.

토마스만 ↔ 칼융 ↔ 프로이트 삼각 구도

        융 (Carl Jung)
       /              \
    깊은 교류        간접적/비판적
      /                \
   헤세 ————————— 토마스 만
        50년 서신 교류
  • 헤세 ↔ 융: 1916년 신경쇠약 후 융의 제자 요제프 랑 박사에게 72회 분석. 《데미안》을 낳음. 헤세 작품 전체가 개성화(individuation) 과정의 문학적 재현.
  • 만 ↔ 프로이트: 만은 융보다 프로이트에 훨씬 더 깊이 기울었다. 1936년 프로이트 80세 생일에 직접 축사 강연. 프로이트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지식인”이라 불렀다.
  • 만 ↔ 융: 직접 교류 기록 명확하지 않음. 융이 한때 나치즘과 접점을 가졌던 것에 대해 거리를 뒀을 가능성 높음.
프로이트 / 토마스 만융 / 헤세
무의식억압, 갈등, 사회와의 긴장원형, 변환, 전체성으로의 귀환
인간관문명과 충동 사이의 비극적 존재개성화를 통해 Self에 도달하는 존재
동양거의 관심 없음핵심 참조점
치유갈등의 명료화통합과 변환

헤세의 동양 접근 vs 만의 한계

헤세의 외할아버지 헤르만 구데르트는 인도 선교사이자 인도학자. 어릴 때부터 산스크리트어 문헌과 인도 관련 책들이 집에 있었다. 동양은 헤세에게 어린 시절의 공기 였다.

만에게 동양은 평생 외부의 것 으로 남았다.

츠바이크-프로이트 라인의 빈 문화권에서 동양으로 간다는 것은 “배신이자 퇴행”으로 읽혔다. 융이 만다라를 그리고 《역경》을 읽기 시작했을 때 프로이트가 “당신은 신비주의로 빠졌다”며 결별을 선언한 것이 1912년 — 그 문화권에서 동양으로 향하는 벽이 있었다.

마의 산 (1924)

(토마스 만 n.d.)

목차

제1부

  • 제1장
  • 제2장
  • 제3장
  • 제4장
  • 제5장

제2부

  • 제1장
  • 제2장
  • 제3장
  • 제4장
  • 제5장

책 속으로

여행 이틀 만이면 젊은이는-삶에 아직 굳건히 뿌리를 박지 않은 젊은이라면-자신의 세계, 즉 자신의 의무, 흥미, 근심거리, 희망이라고 생각해왔던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것도 역(驛)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꿈꿨을지도 모르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가게 되는 것이다. 그와 그의 고향 사이의 공간은 돌고 돌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시간에 부여하는 힘을 갖게 되고 그 힘을 발휘한다. 공간은 마치 시간과 마찬가지로 시시각각 그 자체가 변화할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시간보다 더 크게 변화한다. 공간은 시간과 마찬가지로 망각을 낳는다. 하지만 공간은 시간과 달리 우리의 몸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곳으로부터 해방시켜 우리를 아무것에도 속박되지 않은 원초적인 상태로 돌려놓는다. --- p.16

“생각하기에 따라 재미있다고 할 수도 있고 지루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둘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지요. 어쨌든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이곳에서 너무 활기찬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어요. 새롭고 희귀한 일들을 보고 들을 수 있지요. 내가 이곳에 온 지 하루가 아니라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난 것처럼 보입니다. 이곳에 온 이래 나이를 먹고 더 현명해진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 p.109

“자, 아시겠습니까? 인간성이 처한 딜레마는 바로 이런 것이지, 그 우둔한 여인의 경우가 아닙니다. 병에 의해 인간의 정신화가 초래될 수 있다는 말은 그만하십시오. 육체가 없는 영혼은 영혼이 없는 육체처럼 끔찍한 겁니다. 물론 전자의 경우는 드물고 후자의 경우가 일반적이지요. 대체로 육체는 과도할 정도로 번성합니다. 모든 것을 독점하려 하고 영혼으로부터 벗어나려 합니다. 환자로 살아가는 인간은 그 무엇보다 육체 그 자체입니다. 거기에는 비인간성과 타락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썩은 고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 p.126

‘휴머니스트란 무엇인가? 휴머니즘이란 인간에 대한 사랑이며 그 외의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휴머니즘은 정치적 활동이기도 하며 인류라는 개념을 훼손하거나 더럽히는 모든 것에 대한 반항이며 싸움이다. 휴머니즘은 형식의 중요성을 너무 강조한다고 비난받았다. 하지만 휴머니즘이 형식의 아름다움을 애호한 것은 형식의 아름다움이 인간의 존엄성을 드높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중세는 대조법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인간 정신을 미신 같은 적대감에 빠뜨렸을 뿐 아니라 부끄러울 정도의 무형식을 낳았다. 애초부터 휴머니즘은 지상에서의 인간의 권익과 사상의 자유, 삶의 기쁨을 옹호해 왔으며 천국 따위는 그냥 내버려 두라고 주장해 왔다. 프로메테우스야말로 최초의 휴머니스트이며 프로메테우스는 카르두치(19세기 이탈리아 시인-옮긴이 주)가 찬양한 사탄과 동일한 존재이다.’ --- p.171

“하지만 우리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정확히 이용해야 합니다. 공간이 소중해지면서 시간도 마찬가지로 소중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 ‘현재를 즐겨라!(Carpe Diem)‘라고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노래했습니다. 시간이란 신의 선물입니다. 인간이 이용할 수 있도록 신이 준 선물입니다. 엔지니어 양반, 시간을 이용하세요. 인류의 진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 pp.234~235

“오, 사랑이란! 육체, 사랑, 죽음, 이건 한 몸이야. 육체는 병과 쾌락이며 육체야말로 죽음을 초래하기 때문이야. 그래, 사랑과 죽음, 이 둘은 모두 육체적인 거야. 거기에 이 둘의 무서움과 위대한 마술이 있는 거야. 죽음은 평판도 좋지 않고 무분별하고 얼굴을 수치심에 붉게 물들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엄하고 존엄한 권능이기도 해. 돈을 벌고 배를 채우며 희희낙락하는 삶보다는 훨씬 드높은 것이고 시간에 대해 잡담이나 늘어놓은 진보보다 훨씬 존경할 만한 거야. 죽음이란 역사이고, 고결하고 경건한 것이며,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라서 그 앞에서 모자를 벗고 발끝으로 조심조심 걷게 만들기 때문이야.” --- p.313

출판사 리뷰

‘인생의 걱정거리 자식’인 우리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깨우치게 해주는 작품

토마스 만은 머리말에서 이 이야기가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면서 동시에 세계 대전 바로 이전에 일어난 일이라고 모순되는 말을 하며 시작한다. 이 말은 말하자면 이 소설이라는 꿈의 시공간, 신화적 시공간은 현실에서 일탈한 시공간이 아니라 현실을 품는 꿈의 시공간이며 현실을 꿈처럼 바라본 시공간이라는 뜻도 된다. 그런 꿈의 공간에서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자신이 현실에 속해 있었다면 배울 수 없었을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배우고 얻는다. 그곳은 모든 것이 다 가능한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곳에서 저곳 평지에서라면 금지되었을 것들, 사랑, 일탈, 비사회적인 것을 겪고 경험한다. 그뿐이 아니다. 현실 속에 함몰되어 있었다면 결코 획득할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한 큰 전망을 배운다. 현실에 대한 보다 큰 조감도를 그릴 수 있게 된 셈이며 그가 그런 전망을 획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스승이 바로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이다. 그들은 한스가 지적(知的)으로 세상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해준 사람들이다. 우리가 세상에 거리를 두고 이 세상을 보다 큰 눈으로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다행이 없다. 그냥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줄 알고 살았는데, 세상사 이치를 좀 알게 되니 산은 그냥 산이 아니요, 물은 그냥 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보면 된다.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의 논쟁에는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기 전 토마스 만을, 아니 유럽의 모든 지식인들을 사로잡고 뒤흔들었던 문제가 압축되어 있다. 그 논쟁 속에서 우리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비롯해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공산주의, 나치즘, 파시즘, 자본주의, 휴머니즘, 실증주의, 과학주의, 진보의 신화가 온통 소용돌이치고 있는 당시의 지식인 사회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그런데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의 논쟁을 들으면서, 그들의 논쟁을 통해 세상에 대해 배우면서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어 가는 한스에게 제3의 인물이 나타난다. 바로 페퍼코른이라는 인물이다. 페퍼코른은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의 제자인 ‘인생의 걱정거리 자식’ 한스 카스토르프에게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보다 큰 틀에서 보게 해준, 교육자적인 면모를 지니지 않은 스승이다. 그는 자연의 생명력을 한스 카스토르프에게 가르쳐준 인물이다. 그는 지적인 깨달음을 한스에게 준 것이 아니라 지적인 깨달음을 왜소화시키고 상대화시키는 생명력을 가르쳐준 사람이다.

한스는 위대한 깨우침을 얻은 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깨우침을 결론으로 제시하기 위한 소설이 아니다. 그런 깨우침 후에도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실존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내적 변모를 겪는다. 그렇더라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한스가 그런 깨우침을 얻었다고 해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전쟁은 여전히 벌어지고, 한스도 그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깨달음을 얻었건 아니건 그는 여전히 한스 카스토르프이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한스 자신에게도 자신이 눈 속에서 분명하게, 아주 단호하게 깨달은 내용 자체가 현실 속에서 희미해진다. 그게 바로 우리의 삶이다. 우리는 삶에서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사랑’이라고 홀연 깨달을 수 있고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인간이기에 우리는 곧바로 그 깨달음의 내용을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사랑’을 자꾸 일깨워야 하고 자꾸 다짐해야 한다. ‘인생의 걱정거리 자식’ 한스 카스토르프인 우리도 이 책을 통해 깨우침을 얻자.

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시리즈 소개

「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은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로서 제2대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을 역임한 진형준 교수가 평생 축적해온 현장 경험과 후세대를 위한 애정을 쏟아부은 끝에 내놓는, 10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의 성과물이다. 『일리아스』와 『열국지』에서 『1984』와 『이방인』까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세계문학 고전을 총망라할 계획으로 이미 76권을 선보여 많은 독자의 호응을 얻었고 계속해서 후속 권들이 출간되고 있다.

「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은 진정한 독서의 길을 제시하려는 대단히 가치 있고 선구적인 작업이다. 우리 사회에는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그리고 반드시 ‘완역본’을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팽배하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정작 그 작품들을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죽은’ 고전이다. 진형준 교수는 바로 그 ‘죽어 있는’ 세계문학 고전을 청소년의 눈높이, 마음 깊이에 꼭 맞춰서 누구나 읽기 좋은, 믿을 만한 ‘축역본(remaster edition)의 정본(正本)‘으로 재탄생시켜냈다.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으로 만나는 새로운 세계문학 읽기의 세계

「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은 ‘축약본의 정본’을 지향한다. 이 목표에 걸맞은 알차고 풍성한 내용 및 구성은 책 읽는 즐거움, 앎의 기쁨을 배가해주고, 사고력과 창의성과 상상력을 한껏 키워줄 것이다.

  • 쉽고 재미나는 고전 작품 읽기

고전이 더 이상 어렵고 지루한 작품이 아니라 친구 같은 존재가 된다. 현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눈높이, 마음 깊이에 딱 맞춘 문장과 표현으로 재탄생한 작품들을 통해 즐거운 독서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한다.

  • 작가와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도판과 설명

각 작품마다 시작 부분에 작가와 작품에 관한 다양한 시각 자료와 내용을 소개해놓았다. 저자는 어떤 사람인지, 왜 이 작품을 썼는지, 그리고 이 작품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음미할 수 있게 한다.

  •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흥미진진한 자료와 읽을거리

본문 중간중간에 작품 속 등장인물이나 주제, 맥락, 배경지식 등에 대한 다양하고 친절한 자료와 설명을 덧붙여놓았다. 이것을 바탕 삼아 스스로 더 많은 것을 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돕는다.

  • 오늘을 살아가는 데 힘과 지혜를 주는 작품 해설

각 작품별 해설은 해당 작품의 주제와 시대배경, 작가의 세계관과 문제의식뿐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삶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일과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를 다양하고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스스로 자기 인생과 세상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기르도록 이끌어준다.

저 : 토마스 만 (Thomas Mann)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일찍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1893년에는 산문 습작을 했으며, 자신이 발간하는 『봄의 폭풍우』지에 글을 기고했다. 토마스 만은 다니던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가족이 이미 1년 전에 이주한 뮌헨으로 가서 화재 보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하지만, 곧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1895년에서 1896년까지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 예술 문학, 경제 및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시절, 김나지움 시절부터 이미 그를 사로잡았던 슈토름, 헤르만 바르, 폴 부르제, 헨리크 입센 등을 탐독하였고, 직접 『짐플리치시무스』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1년 첫 장편소설 『부르덴브르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이 무렵 단편소설들을 모아 단편집『토니오 크뢰거』(1903)도 발표하였다.

1905년 뮌헨 대학교 수학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카챠라는 애칭으로 불림)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가 태어났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가족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토마스 만의 두 여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듯이, 아들 클라우스 만이 자살했고, 막내 미하엘 만도 신경안정제 과용으로 의문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다가 남편을 잃은 모니카 만은 정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1912녀 폐병 증세가 있어 부인이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문병을 간 토마스 만은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 체류하는 손님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낀 인상에도 매료되었는데, 이런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 점점 방대해져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마(魔)의 산』이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창작을 중단하고, 평론집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1918)과 같은 정치 평론을 발표했다. 전쟁 초기 독일 문화와 독일 시민 계층의 와해를 걱정하며 국수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형 하인리히 만과 불화를 겪게 되지만, 평론「독일 공화국」(1922)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 계급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던 중 1929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31년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한 이후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작가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33년 바그너 서거 50주년이 되던 날, 토마스 만은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끝으로 그는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1935년에는 나치 정권에 대해 공개 반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193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가 되어 나치 타도를 부르짖었으며,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으로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토마스 만은 현실의 공산주의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인 사회적 평등을 존중했다. 그래서 구동독 정권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매카시 위원회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에 환멸을 느낀 토마스 만은 1952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 1955년 동독 및 서독에서 F.실러 사망 150주년 기념강연을 하고, 고향 도시 뤼베크의 명예시민이 되어 스위스로 돌아왔지만, 혈전증 진단을 받아 8월 12일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취리히 근교 킬히베르크 교회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키 작은 프리데만 씨Der kleine Herr』(1897),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Buddenbrooks』(1901), 「트리스탄Tristan」(1903), 「굶주린 사람들Die Hungernden」(1903), 「글라디우스 다이Gladius Dei」(1903), 「토니오 크뢰거」(1903), 「신동Das Wunderkind」(1903), 「벨중족의 혈통」(1905), 「피오렌차Fiorenza」(1906), 「대공 전하」(190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1912), 「주인과 개Herr und Hund」(1919), 『마의 산Der Zauberberg』(1924), 「무질서와 젊은 날의 고뇌」(1926)등이 있으며, 『요셉과 그의 형제들』(1943)는 1926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야 비로소 완간되었다.

또한 『바이마르의 로테Lotte in Weimar』(1939),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1947), 『선택받은 사람』(1951), 「속은 여자Die Betrogene」(1953)가 있으며, 1910년부터 쓰기 시작한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Die 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은 1954년 [회상록 제1부]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출간되었으나, 결국 이 소설은 그의 미완성작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