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쌍소 2023 "느리게 산다는 것 - 서두르지 않는 삶" 강주헌

(피에르 쌍소 2023) 느리게 산다는 것

“인생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나를 돌아보며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느림”‘느림의 철학자’ 피에르 쌍소가 지친 영혼들에게 전하는 행복의 의미지금 우리에게 ‘느림’이 필요한 이유!지친 영혼을 달래기 위해 ...

저자 피에르 쌍소 (Pierre Sansot) (1928-2005)

프랑스의 수필가이자 철학 교수로 지낸 피에르 쌍소는 1928년에 태어나 프랑스 그르노블에 있는 피에르맹데-프랑스대학과 몽펠리에의 폴 발레리대학에서 철학과 인류학을 가르쳤다. 행복을 찾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느림’의 방식을 찾은 그는, 환경에 조화를 이루는 삶의 자세를 이야기한 여러 에세이를 통해 ‘느리게 사는 삶’을 강조했고, 많은 이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를 ‘느림의 철학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는...

책소개

“인생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를 돌아보며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느림” ‘느림의 철학자’ 피에르 쌍소가 지친 영혼들에게 전하는 행복의 의미

지금 우리에게 ‘느림’이 필요한 이유! 지친 영혼을 달래기 위해 ‘느림’이라는 삶의 방식을 권유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은 차분히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을 위해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세상의 흐름은 점점 빨라지고, 그야말로 속도전에 살고 있는 우리는 휴식은커녕 잠시의 쉼 속에서도 누군가 나보다 앞서가는 것은 아닌지 늘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살아간다. 한 번 흐름에서 밀려나면 아무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질주하는 삶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어떻게 휴식을 즐겨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제대로 쉬어보거나,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현재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잠깐이라도 엄청난 삶의 압력에서 해방되고 싶어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결핍된 상태에서 살아가는 중이다. 그렇게 바삐 사는 데도 녹록치 않은 현실. 그런데 인생을 즐기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일까? 더 많이 가지려고 바쁘게 살수록 영혼은 피폐해지고 메말라가는 현대인들. 진정한 삶의 의미는 놓친 채, 영혼이 지쳐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프랑스 철학 교수이자 수필가였던 피에르 쌍소는 행복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삶의 자세로 ‘느림’을 제안한다.

목차

추천의 글 머리말

시간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한가로이 걷기 듣기 권태 꿈꾸기 기다리기 내면의 고향 글쓰기 포도주의 지혜 모데라토 칸타빌레

리듬의 교체(막간의 시간)

의문 제기와 유토피아 그리고 조언

문화의 과잉 도시계획의 지연에 대하여 분주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순박한 사람들의 휴식 하루의 탄생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역 : 강주헌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브장송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한국외국어대학교와 건국대학교 등에서 언어학을 강의했으며, 2003년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권력에 맞선 이성』,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등 노엄 촘스키의 저서들과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 『대변동』, 『세상은 실제로 ... 펼쳐보기

책 속으로

삶은 내게 주어진 기회, 두 번 주어지지 않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삶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기 때문에, 또 이상적으로 균형이 맞춰질 때 기쁨의 크기가 고통의 크기를 넘어서기 때문에 삶이 행운이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삶을 행운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 살아서 아침이면 햇빛을, 저녁이면 어둠을 만나는 행운을 매번 누리기 때문이고, 모든 사물이 본래의 광채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며,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미소와 찡그린 얼굴에서 불만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세상이 나에게 말을 걸기 때문이다. 삶 자체는 파도처럼 일렁이며 넓게 펼쳐진다. 삶은 거친 돌풍이나 강물보다는 작고 섬세한 물방울과 같다. 우리를 구속하는 억센 힘이라기보다는 보드랍게 감싸주는 빛과 같다.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삶이라는 특권을 핑계로 나는 나만의 공간을 원했고, 원했어야 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 혹은 영원에 가까운 공간에 은거하거나 피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존재함으로써 발생하는 시간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물론, 부정직할 수밖에 없는 온갖 제안을 해오며 내 공간을 차지하려는 사람들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제안에 반대하는 이유를 나는 이 짤막한 책에서 밝혔다. 나만의 속도에 맞추어, 더 정확히 말하면 운명의 여신이 나를 위해 미리 정해둔 속도에 맞추어 살아가도록 나를 내버려 두라고 그들에게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다. --- 「머리말」 중에서

한가로이 걷는다는 것은 시간을 멈추는 게 아니라, 시간에 떼밀리지 않고 그 흐름에 순응한다는 뜻이다. 한가로이 걷기 위해서는 여유로움이 전제되어야 한다. 요컨대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세상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한가로이 거닐 때 우리는 물건들을 그저 구경할 뿐, 그 물건들을 반드시 사겠다는 욕심까지 부리지는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조심스레 바라보지만 그들의 관심을 끌려고는 하지 않는다. 나는 분주한 도시에서도 느긋하게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을, 상품화된 사회에서도 순간의 경이로움을 맛보게 해주는 중요한 오브제라 생각하고 싶다. 한가로이 걷는 여인의 모습에서는 당당하면서도 유려한 면마저 엿보이고, 한가로이 걷는 남자의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호기심에 찬 신중한 눈빛은 총기로 번뜩인다. 둘 다 나에게는 즐겁게 관찰해보고 싶은 대상이다. --- p.43

나에게 권태는 세상을 정직하게 활용하고, 내가 세상에게 다가가거나 반대로 세상에게서 벗어나, 세상을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 세상을 다시 음미하는 수단이다. 앞으로 나는 활기찬 생명력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순수한 충동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충동이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하고 그러지 않는 것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는 것만을 기억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절제된 권태를 권하며,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어떤 편견도 없이 권태를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 p.79-80

나는 포도밭을 보면 태양과 돌과 건조한 기후가 떠오른다. 물론 가뭄도 빼놓을 수 없다. 포도주를 마시면 때때로 목구멍이 불타는 것처럼 화끈거린다. 목구멍 너머까지 화끈거리는 데다 따가운 햇살까지 더해지면서 젊은이들은 그늘의 너그러움을 잊어버렸다. 그들의 얼굴은 처음에는 잉걸불처럼 저물어가는 햇살에, 다음에는 자신들이 들이켠 포도주라는 불덩이로 인해 벌겋게 달아오른다. 겉보기에도 시원하게 보이는 탓에 목구멍에 밀어 넣은 분홍빛 포도주 때문에 그들의 몸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른다. 그들은 온몸이 타는 듯한 더위를 느끼고, 그 살아있는 장작 전체를 짓누르는 듯한 고통을 기분 좋게 견딘다. 그렇게 온몸이 다갈색으로 변해서 잠을 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새벽까지 그렇게 견딘다. --- p.141-142

공원에서 덤불 숲을 사이에 두고 기분 좋게 잠깐만이라도 대화를 나눠보라. 자갈길에서도 똑같은 매력을 맛볼 수 있다. 자갈길 덕분에 우리는 누군가 가까이 다가온다는 걸 예측할 수 있다. 그가 자갈을 밟으며 본의 아니게 소리를 내니까. 그런데 요즘 시청에서는 이런 자갈길을 아스팔트 길로 바꾸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발자국 소리가 존재감을 상실해가는 실정이다. 내가 부자여서 스위스에서 삶을 마칠 수 있다면 좋겠다. 바라건대, 나는 고통스럽게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순간적으로 꺼지는 불빛이었으면 좋겠다. 헌신적인 간호사가 매일 나를 휠체어에 태우고 산책을 시켜주면 좋겠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내가 저 호수와 맞은편 강변의 희미한 빛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면 좋겠다. --- p.232

솔직히 말해서, 나도 하루에게 내 약속을 어기는 때가 있다. 밤에서, 꿈에서 벗어나기가 힘들 때가 그렇다. 시작이 어그러지면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시작하는 게 부끄럽다. 하지만 내일이면 또 다른 새벽이 어김없이 내게 찾아올 것이다. 내일 또 다른 하루가 태어날 것이다. 내일 나는 다시 견자(見者)가 될 것이다. 만물을 향해 손을 뻗고 계절의 바퀴를 돌릴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떤 계절이든 나에게는 마음에 들 것이다. 빛이 저물 때까지 나는 그 빛과 함께할 것이고, 밤이 새벽에 의해 찢겨나갈 때까지 밤과 함께할 것이다. 누더기를 걸친 이 세상에 왕의 옷을 입혀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 내면에서 들끓는 진정한 충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나는 세상에서 누더기를 벗겨낼 것이다. 내일 또다시 나는 아직 살아있는 존재라는 행운을 헤아려볼 것이다. --- p.259∼260 펼쳐보기 출판사 리뷰 “나만의 속도에 맞추어 살아가도록 나를 내버려 두라!” 진정한 행복을 위해 “서두르지 않은 삶”

시간에 쫓기지 않고 천천히 삶을 음미하며, 오롯이 내게 집중하는 법, ‘느림’ 더 많이 가지려고 바쁘게 살수록, 더 피폐해지는 영혼. 외로운 우리에게 행복을 찾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과 해결책은 “느림”을 삶의 방식에 적용하는 것! 출간된 지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프랑스 철학가 피에르 쌍소의 화제작, 《느리게 산다는 것》

고상하고 형이상학적인 권태나 무기력한 나태가 아니라 행복감에 젖어 한껏 하품할 수 있는 느림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즐겁게 권태로운 삶은 과연 어떤 삶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모데라토 칸타빌레, 절제를 넘어서 느리고 우아하게!” _최재천(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난폭하고 빠른 속도의 정신없는 이 세상에서 하나의 휴식이자 마법 같은 명상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책!” _ 프랑스 독자 리뷰

느림은 나태함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을 느끼며 천천히 갈 뿐 산책을 하며 주위를 바라보고, 여유를 즐기며 환경과 조화로운 삶을 사는 것!

쌍소가 제안하는 느림은 ‘나태’ 또는 ‘게으름’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느리지만 천천히 갈 뿐 게을리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속력을 조금 줄이며 나와 주변을 돌아보는 삶을 말한다. 즉, 일상의 속도를 늦추면서 정해진 시간을 앞당기지 말고, 시간에 쫓겨서 허둥대지 않으면서, 나만의 속도에 맞추어 살아가도록 나 자신을 내버려 두는 삶의 방식이다. 느림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에 쫓기지 않겠다는 의지, 결국 세상을 받아들이고 삶의 길에서 우리 자신을 잊지 않는 능력을 키워가겠다는 의지의 확인이다. 팬데믹을 경험하고, 휘몰아치는 태풍과 같은 세상, 사막처럼 메말라가는 인간관계 속에서 ‘느림의 철학’은 외로운 우리에게 행복을 찾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전이자 해결책인 듯하다. 그냥 지나치기에 주변은 아름다움이 가득한데, 그걸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우리가 사방에서 재촉받고, 압력에 시달리는 사회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하루빨리 ‘느림’의 방식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다. 저자는 “삶은 내게 주어진 기회, 두 번 주어지지 않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삶을 행운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 살아서 아침이면 햇빛을, 저녁이면 어둠을 만나는 행운을 매번 누리기 때문이고, 모든 사물이 본래의 광채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며,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미소와 찡그린 얼굴에서 불만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세상이 나에게 말을 걸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저마다 우리의 삶은 소중한 가치를 담고 있기에 삶이라는 행운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산책하며, 주위를 바라보고, 여유를 즐길 것. 그래서 내 주변과 조화로운 삶을 살면서 소소하지만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삶. 지금 이 순간, 행복을 위해 우리가 당장 삶에 느림을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서둘러 휴식을 권하며, 느림의 철학을 삶에 적용하기를 희망한다.

개개인이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한 세상이 존재할까? 행복을 위해 ‘느림’을 실천하는 9가지 방법

이 책에는 느림을 실천하는 9가지 방법이 수록되어 있다. 철학, 문학, 사회학이 어우러진 기술 방법으로 감수성을 한층 더했다. 그래서 단번에 이해가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찬찬히 문장들을 느끼고 따라가다 보면, 쌍소가 전하려는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된다. 느림을 실천하는 방법에는 한가로이 거닐기, 다른 목소리에 귀담아듣기, 권태로움 속에서 여유로움 찾기, 꿈꾸기, 열린 자세로 기다리기, 내면의 고향 찾기, 글쓰기, 가벼운 술 한 잔의 여유 즐기기, 남을 비판하거나 질투하지 않기 등이다. 권태를 즐기고, 잠에 빠진 듯한 시골을 찾고, 대담하고 고독한 글쓰기를 시도하고, 결단코 일어나지 않을 일을 기대하며,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포도주에만 있는 고유한 지혜에 탐닉한다면, 삶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선물일 것이다. 오로지 산 정상을 향해 숨 가쁘게 올라가느라 예쁘게 피어있는 꽃, 바람에 일렁이는 나무, 흙냄새, 시원한 바람 등을 느끼지 못한다면, 정상에 오른들 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못했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는데, 아무리 창문 밖에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져 있어도 전혀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세상의 흐름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지만 주변을 돌아보고 내 삶을 즐기지 못한다면, 우리는 왜 사는 것일까. 개개인이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한 세상이 존재할까? 지금보다 조금만 느리게 가보자. 느리지만, 가장 빨리 ‘행복’이라는 도착점에 안착할 수 있다.

추천평

  •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오래전 결혼 30주년을 맞아 아내와 함께 일주일간 프랑스 프로방스에 머물렀다. 매일 아침 길 건너 빵 굽는 냄새에 눈을 떴다. 작은 마을에 있는 장에 들러서 주전부리로 점심을 때우고, 파스타 면과 포도주를 사 들고 돌아와 함께 저녁을 지어 먹었다. 위스키나 소주를 단번에 입안으로 털어 넣는 게 아니라, ‘포도주잔을 얼굴 높이까지 치켜들어 전등불에 비추며 가만히 응시하다가 조심스레 마셨다.’ 이렇듯 프로방스에서는 시간과 삶을 불빛에 버무려 음미하는 느림이 가능했다. 피에르 쌍소는 도시에도 때론 마음껏 머물 수 있고 근심에 싸여 혼란스러워도 활기차게 걸을 수 있는 공간, 즉 ‘용도가 결정되지 않은 공간’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버트런드 러셀은 우리 모두 조금씩 게으르게 살면, 보다 많은 사람이 일할 기회를 얻는다고 주장했다. 러셀의 ‘게으름’과 쌍소의 ‘느림’은 모두 우리가 느긋하게 있을 때 가장 인간답다고 가르친다. 느림은 성격이 아니라 선택의 영역이란다. 고상하고 형이상학적인 권태나 무기력한 나태가 아니라 행복감에 젖어 한껏 하품할 수 있는 느림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즐겁게 권태로운 삶은 과연 어떤 삶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쌍소의 답을 빌리자면,

“모데라토 칸타빌레, 절제를 넘어서 느리고 우아하게!”

  • 강주헌 (옮긴이)

왜 뜬금없이 이 책에서는 ‘느림’을 예찬하는 것일까? 무섭도록 빨리 변하는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저 위로하려고 느림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 특히 SNS에 올라온 글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며 상대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들에 대한 따끔한 충고일 수 있다. 이런 성급한 반응에는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자칫하면 이른바 가짜뉴스에 휘둘리는 꼭두각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실수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바로 ‘느림(lentuer)’이 필요하다. 느림의 어원인 letus에는 지금의 느림을 연상하는 ‘나태함’이란 뜻 이외에 ‘탄력적이고 유연함’이란 뜻이 있었다. 도형으로 말하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직선은 천편일률적이다. 하지만 곡선은 우아하고 다양하다. 곡선적인 삶은 여유로운 삶이며, 곧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삶이다.

Related-Notes

References

피에르 쌍소. 2023. 느리게 산다는 것 - 서두르지 않는 삶. Translated by 강주헌.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1173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