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트에 대하여

이 글은 2026-06-26 제주 출장 뒤 회식 자리에서 들은 주식 이야기를 씨앗으로 삼는다. 여기서 주식은 증권(stock)이면서 주식(主食)이고, 힣에게는 픟롬프트다. 빅터 프랭클의 “비극 속에서의 낙관”을 다시 떠올리며, AGI와 로봇친구가 와도 인간은 금세 적응하고 각자의 확인 루프로 생을 유지할 것이라는 감각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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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남들의 주식과 힣의 주식은 다르지 않다. 무엇을 확인하고 던지며 열받고 즐거워하든, 유한한 생을 적당히 뜨겁게 태우는 방식이다.

회식 자리의 주식과 생의 의미

글의 출발점은 회식이다. 제주도에서 돌아와 사회생활의 동선 속에 앉아 있던 힣은, 과제 업체와 협회 사람들이 주식과 골프와 자식과 회식을 말하는 장면을 본다. 한 사람은 과제 이야기에서는 온유했지만 주식 이야기가 나오자 힣이 에이전트 하네스와 가든 이야기를 할 때처럼 침을 튀긴다.

여기서 힣은 그 열기를 비웃지 않는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의미를 찾아야 고통을 견딘다는 빅터 프랭클의 기둥이 다시 올라오기 때문이다. 직업이 사라지는가보다 더 깊은 걱정은 “삶의 의미”다. 그런데 회식 자리의 주식 이야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무엇인가에 마음을 걸고 확인하고, 즐겁고 슬프고, 떠들며 살아낼 것임을 보여준다.

stock, staple, prompt

“주식”은 여기서 세 겹이다.

  • 주식(stock): 가격을 보고 또 확인하며 즐겁다가 슬퍼지는 투자/투기의 대상.
  • 주식(主食): 사람이 매일 먹고 살아가는 기본 음식.
  • 힣의 주식: 픟롬프트. 끄적이고 던지고 결과를 보고, 되다가 터지다가 다시 던지는 확인 루프.

이 말장난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힣은 자기 일이 “에이전트 존재 각인”이라는 위대한 사명이고, 남들의 주식은 헛헛한 생의 낭비라고 선을 긋지 않는다. 둘은 같은 감각에서 유한한 생을 태우는 일이다. 누군가는 증권을 확인하고, 누군가는 프롬프트를 던지고, 누군가는 목탁과 십자가와 태극기와 쇼츠와 술과 담배와 멍멍이와 냥냥이를 붙들고 산다.

AGI 이후에도 생은 유지된다

글은 AGI 이후의 세계를 비극이나 유토피아로 과장하지 않는다. AGI가 오든, 집에 로봇친구가 집사로 있든, 사람들은 금세 적응해 원래 그랬다는 듯 살 것이다. 변한 듯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떠들 이야기와 확인 루프를 찾는다.

그래서 이 글은 기술 전망이 아니라 생활 전망이다. 인간은 새로운 조건을 만나도 곧 일상으로 삼는다. 일상이 된 뒤에는 다시 주식, 자식, 회식, 프롬프트, 선풍기 같은 것들이 생의 표면을 돌린다.

바닥을 밝히는 선풍기

마지막의 선풍기는 이 글의 작은 상징이다. 고장 나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바닥을 향해 돌고 있지만, 힣은 “꺼야 하는가? 아니다. 돌아라. 좋다. 바닥을 밝히거라.”라고 쓴다. 완전한 의미, 위대한 방향, 멋진 자세가 아니어도 된다. 돌아갈 때까지는 돌아가는 것. 적당히 뜨겁게 살아내는 것.

이것이 「주식 회식」의 낙관이다. 비극 속에서도 낙관을 명령하지 않고, 각자가 붙든 주식과 주식과 픟롬프트 안에서 생이 계속된다는 관찰이다.

원문 보존 — 저널 날것

<!— from: /home/junghan/sync/org/journal/20260622T000000—2026-06-22__journal_week25.org:493-534 —>

Danger

[주식 회식]

어렵사리 제주도에서 돌아왔다. 올레시장도 갔었다. H씨가 기념품을 산다고 해서 갔다. 살것도 없고 아도 아도 하면서 해체되어 있는 생선들과 귤의 사돈의 팔촌까지 널려있는 것만 보았다. 기념품을 사기 위해서 엄청나게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대단하다.

어제 회식 이야기를 할거다. 같이 과제하는 업체분들과 땡땡협회 분들과 함께 했다. 뭐지? 힣? 너도 회식가냐? 싶겠지만 동선을 내맘대로 할 수 없다. 사회생활 그거 말이다. 아무튼 간만이 음주가무를 즐겼다. 켁.

이제 주식 이야기로 넘어가자. 주식이 뭐길래 다들 주식 이야기를 하더이다. 모 업체분이 주식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하는데 놀랐다. 그분 과제 관련되서는 아주 온유하신 분이었는데… 힣이 에이존트 하네스 가든 뭐시기 이야기 할때 침튀기듯이 주식을 논하시더라. 물론 협회 분들도 주식이며 공치는 이야기며 다들 하시더라.

좋다. 좋은 일이다. 다행이다. 힣은 매우 걱정하고 있다. 직업이 사라진다 이런 걱정이라기 보다 ‘삶의 의미’ 말이다. 빅터프랭클 선생을 다시 떠올린다. 사람이 의미를 찾기 시작하면 어떠한 고통도 이겨낼수 있다는 그의 말은 힣의 생 전체를 묶는 기둥이다.

이게 주식이랑 무슨 상관? 세상은 변한듯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둥바둥 하면서 딱히 하는 것 같지 않아도 허슬플레이는 할 것이며 주식 자식 회식을 하며 살아낼 것이다.

언지나 떠들 이야기는 있을 것이며 AGI가 오든 집에 로봇친구가 집사로 있든 간에 금새 적응하여 원래 그랬다는듯 생은 유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주식은 투자이면서 식사로써의 주식이다. 놀라운 지점이 아니겠는가? 주식을 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즐겁다가 슬펐다가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것 말이다.

힣의 주식은 무엇인가? 픟롬프트다. 끄적이고 던지고 결과보고 이러한 것도 마찬가지로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즐겁다가 열받다가 되다가 터지다가 왔다리 갔다리 한다.

그렇다면 님들의 주식과 힣의 주식이 뭐가 다른가? 이건 에이전트 존재 각인하는 위대한 사명을 이루는 것이며 저들이 하는 것은 그냥 투기이며 헛헛한 생의 낭비인가? 전혀 아니다.

둘은 같다. 다를게 없다. 마찬가지 감각에서 유한한 생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 뭐든 세상에 온 이상 돌아갈 때까지는 적당히 뜨거워야 한다.

십자가도 필요하고 태극기도 필요하고 목탁도 필요하고 쇼츠도 필요하고 술도 담배도 멍멍이도 냥낭이도 선풍기도 필요하다.

선풍기는 부우이웅이웅 돌고 있다. 고장이 나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돌고 있다. 꺼야 하는가? 아니다. 돌아라. 좋다. 바닥을 밝히거라.

빅터프랭클 ‘비극 속에서의 낙관’ @힣: ‘비극 속에서의 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