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정한(junghan) 이다. 이름의 비밀이 언젠가부터 문득문득 의식으로 올라왔다. 그 기원 말이다. 가볍게 적어 놓는다.

jung 융

먼저, jung 정에서 시작하자. 언젠가 TTS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융하ㄴ"이라고 했다. 무슨 소리지? 융? 그렇다. "jung"가 "융" 인 것이다.

@칼융 Carl Jung #분석심리학

이 고귀한 이름을 이런 저런 책에서 얼마나 건너들었던가. 그때마다 그의 이름인 jung이 눈에 계속 밟혔다. 귓가에 융융융 했다. 융은 해커의 원형이다. 이맥스는 그를 닮았다.

han 한

이제 han 한을 보자. 하필이면 '한'인가? 한으로 시작하는 단어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한글이 아니겠는가?

마치 이상한 고리처럼 자기를 설명하는 한이 아닌가. 그는 한글을 잘 모른다. 뭔가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뭔가 찝찝하다. 여기에서 들어가다 보면 세종대왕의 고민에서 파스파 문자까지 그물처럼 올라온다.

앎은 찰라에도 채워지는 것. 지식은 나중에 따라 오는 것이기도 하다. 앞이기도 뒤이기도 한 것이다.

정한 정환

마지막으로 정과 한을 붙여보자. 그렇다. "정한"이다. 익숙하면서도 이름으로는 어색하다. "정환"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알고 있다. 그래서 이름 적을 때 아니면 "정환"이라고 불러도 신경쓰지 않는다. "정환" 얼마나 고귀한 이름인가!

아! 소파 방정환 선생님 말이다. 어린이날 방정환!

언젠가 도서관에서 지나치듯 방정환 선생의 삶에 대한 책을 읽었다. 읽으려고 한게 아니라 그냥 눈에 밟혔다.

사실 십진분류 900번대는 잘 찾지 않는 편이다. 그의 조테로 공유폴더를 보시라. 몇 권 없다.(#조테로공유그룹)

근데 모 도서관 노트북석이 딱 990번(전기) 서고 앞이다. 기지개를 펴고 두리번 거리면 딱 눈에 걸린다. 여기서 그의 #어쏠로지가 터져 나온 것이다 (@안중근 모든것 안쏠로지)

아무튼, 방정환 선생은 한번 이야기를 쏟아내면 눈물샘의 코르크마개를 뽕따버렸다고 한다. 일본 순사까지 따버렸다고 하니 그에게 언어의 한계는 세상의 한계가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서 이게 정한과 무슨 상관? 정한의 할아버지는 어릴 적 전국을 순회중이던 방정환 선생을 만나셨을까? 그때 받은 어떤 것이 아버지를 통해 아들인 나에게로 온 것 인가? 그래서 할아버지는 나의 이름을 정한이라고 지어주신 것인가? '한'자 돌림인지라 '환' 대신 '한'으로. 깊도다! 어린이 사랑이여.

니체의 초인의 길은 낙타 사자를 거쳐 어린이로 깃든다. 어린이다. 대상이 아니라 완성으로서의 어린이다.

지금 하는 모든 연결 고리는 결국 다시 어린이로 모인다. 기록하여 쌓는 것 같지만 결국 모름으로 돌아온다. 거기서 온전함으로 태어난다. 창조의 싹이 트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름에 대한 몇 글자를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