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IOGRAPHY

알렉스 탭스콧. 2024. 웹3 시대와 새로운 기회. Translated by 신현승. 더퀘스트.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9383511.

스티브 워즈니악. 2008. 스티브 워즈니악 - 자서전. Translated by 장석훈. 청림출판. https://www.yes24.com/product/goods/2796520.

패트릭 벳 데이비드, and 그레그 딘킨. 2021. 파이브 팩터 : 스펙, 배경, 운을 뛰어넘는 5가지 비즈니스 예측의 기술. Translated by 서유라. 부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04067409.

존 카우치, and 제이슨 타운. 2020. 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 : 디지털 시대,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Translated by 김영선. 어크로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90062111.

History

저 : 스티브 워즈니악 (Steve Wozniak)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 컴퓨터의 공동 창립자이자, ‘컴퓨터 천재’, ‘실리콘밸리의 우상’, ‘이 시대 마지막 해커’, ‘마법사 워즈’등의 화려한 닉네임을 가진 스티브 워즈니악. 닉네임만큼이나 다양한 일을 ‘저질러 온’ 괴짜 엔지니어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그는 스티브 잡스의 도움 없이 혼자서 애플Ⅰ과 애플Ⅱ를 단독 설계했으며, 컴퓨터에 모니터와 키보드를 결합하여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PC를 발명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컴퓨터를 만들기 전인 대학 시절에는 무료로 전화를 걸 수 있는 초기 해킹 장치, 블루 박스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 해커들은 기존 전화 시스템의 문제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선한 의도에서 해킹을 시도했는데, 이때 이후에는 사익을 위해 활동하는 해커(일명 크래커)들만이 들끓게 되면서 스티브 워즈니악을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해커’라 일컫게 되었다.

HP에서 약 4년간 계산기 만드는 일을 하다가 “회사를 만들더라도 관리 업무는 하지 않고 평생 엔지니어로만 남을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넘어가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 컴퓨터를 공동 창립했다. 애플을 최고의 회사로 키운 후에는 회사 성장의 주역이라 믿는 일반 직원들에게 자신의 개인 주식을 헐값에 나눠 주어 그들을 일약 백만장자로 만들어 줬다. 그는 고생은 함께 했는데 일부에게만 부가 돌아가는 구조는 불합리하다며, 정작 자신은 큰 부자가 되는 것에 별반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애플이 승승장구를 거듭할 무렵 그는 모든 가전제품을 조종할 수 있는 원버튼의 통합 리모컨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애플을 나와 벤처 회사를 차린다. 그가 만든 세계 최초의 통합 리모컨은 열렬한 평가를 받았지만 당시만 해도 가정에서 여러 종류의 가전제품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터라 회사는 곧 문을 닫는다. 하지만 그는 사업상의 실패가 곧 발명상의 실패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중시하는 것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더 좋은 기계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을 잠시라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수백만 달러도 아깝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대형 록 콘서트의 기획자로, 초등학교의 컴퓨터 선생님으로, 실리콘 밸리의 자선가로 종횡무진 활약하며 즐거운 인생을 이어가는 중이다. 현재는 애플의 자문역으로 복귀했으며 강연과 발명 등으로 여전히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스티브 워즈니악 - 자서전 iWoz : Computer Geek to Cult Icon

(스티브 워즈니악 2008)

  • 스티브 워즈니악 장석훈 2008

애플의 또 다른 스티브, 드디어 입을 열다! 애플이라는 기업이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이 두 명의 천재들에 의해 공동 창립된 회사라는 것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이 책은 내성적인 성격 탓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왔던 스티브 워즈니악의 자서전이다. 이 책 『스티브 워즈니악』(원서명 iWoz)을 통해 그는 천재성이 돋보였던 자신의 어린 시절과 최초의 PC를 발명하고 애플을 세워 백만장자가 된 이야기, 애플을 그만 둔 후 새로운 도전을 모색했던 나날들에 대해 과감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애플Ⅰ은 잡스와 함께 만든 것이 아니라 워즈니악 자신의 단독 발명품이며, 자신이 애플을 나온 것은 잡스와의 불화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어 벤처 기업을 설립하려는 아이디어 때문이었다는 새로운 이야기들도 들려준다.

1장 일렉트로닉 키드

  • 동네 친구들과 함께한 모험들
  • 과학경진대회를 평정하다
  • 내성적인 장난꾸러기
  • 마술 걸린 텔레비전
  • 생애 최초의 컴퓨터를 만들다
  • 양심적인 해커
  • 스티브와 벌인 최초의 사업

2장 괴짜 엔지니어의 천재적인 프로젝트

  • 낮엔 휴렛패커드에서 밤엔 미친 폴란드인으로
  • 거침없는 프로젝트
  • 획기적인 아이디어

3장 행복한 컴퓨터 애플의 탄생

  • 애플I
  • 우리들만의 회사를 열다
  • 애플II
  • 포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주식 공개
  • 워즈 플랜

4장 지금, 끌리는 것에 미쳐라

  • 기억상실증에 걸리다
  • 내가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얘기를 했나요?
  • 애플을 떠나 클라우드 나인으로
  • 매드 해터를 아시나요?
  • 내 삶의 규칙

감사의 글

책 속으로

1장 일렉트로닉 키드

아버지는 공학이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며 엔지니어란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도록 도움이 되는 전자 장치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엔지니어가 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오늘날까지도 나는 엔지니어가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나 또한 언젠가 그런 사람이 될 것이라 믿으면서, 내 인생을 공학에 바쳐 왔다. … 오늘날에도 난 늘 기술적인 측면과 인간적인 측면을 함께 염두에 둔다. 컴퓨터를 만든다고 할 때 이를 부품 몇 가지만 조립하면 되는 것이라고 여기는 얼간이들과는 달리, 나는 부품 조립 하나까지 예술가처럼 하고 싶다. 그 누구보다 훌륭하게, 인간에게 가장 쓸모 있는 형태를 만들고 싶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엔지니어이긴 하지만, 인간을 더 많이 생각하는 엔지니어라고. 동네 친구들과 함께한 모험들(p.18)

나는 내 머리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나보다 훨씬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다. 당시 내 눈에 우리 고등학교의 선생님들은 모두 머리가 좋은 학자였다. 지금은 좀 냉소적이다, 모두가 똑같은 것을 읽고 똑같은 답을 받아들이는 것을 기준으로 학생들의 지능을 규정하는 모습을 수없이 본 뒤로 그렇다. 다른 학생들도 똑같은 것을 읽고 그들과 똑같은 것을 말해야 머리가 좋다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난 독자적이었으며 좀 튄다. 스스로 문제를 사유하고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모두 질문해서 확실하게 아는 것을 머리가 좋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성적인 장난꾸러기(p.59)

그러나 전화 프리킹을 하는 진짜 목적을 나는 잊은 적이 없었다. 그것은 시스템을 교란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화 회사가 일절 함구하는 전화 시스템의 취약점과 숨겨진 사실을 알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부정직한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걸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돈을 지불하고 통화했다. 절대 블루박스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프리킹을 하는 것은 내게 있어 일종의 도둑질이었다.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와 벌인 최초의 사업(p.134)

2장 괴짜 엔지니어의 천재적인 프로젝트

분명하게 말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컴퓨터를 설계하는 엔지니어,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 엔지니어, 농담 잘 하는 엔지니어, 사람들을 가르치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다는 사실이다. 낮엔 휴렛패커드에서 밤엔 미친 폴란드인으로(p.143) 아무튼 이 이야기의 결론은 내가 이 프로젝트를 나흘에 끝냈고 그것은 제대로 작동되었다는 것이다. … 스티브는 그들이 준 것이라며 내게 700달러의 반을 주었다. 게임에는 모두 45개의 칩을 사용했는데 그들은 우리가 얼마나 적은 수의 칩을 사용했느냐를 기준으로 보수를 결정했다. 스티브가 그때 말했던 것보다 좀 더 많은 액수인 몇 천 달러를 받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철부지였다. 그는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고, 그 점이 기분 나빴지만 난 그것을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았다. 도덕적인 것은 내게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다. 지금도 그가 왜 거짓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아타리에서 보냈던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지금도 그와는 끈끈한 무언가가 있다. 거침없는 프로젝트(p.177)

나는 키보드의 키를 몇 개 눌러 보았다. 놀라운 순간이었다. 내가 누른 글자가 화면에 나타나는 것 아닌가. … 1975년 6월 29일 일요일. 그때 나는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랐다. 역사상 처음으로 키보드로 글자를 쳐서 눈앞의 스크린에 띄우는 일이 얼마나 획기적인 일이었는지를. 우리들만의 회사를 열다(p.198-199)

3장 행복한 컴퓨터 애플의 탄생

“장난치거나 다른 사람 골탕 먹이는 짓 하면 안 돼. 회사에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준단 말이야.”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라면 했음직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것은 스티브 워즈니악이다. 나는 일에 있어서는 진지하다. 그동안 멋진 물건들을 만들어 왔다. 이 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회사를 세우고 사람들 앞에서 우리 제품을 소개하는 일에 있어서도 진지하다. 하지만 나는 즐겨야 하고 장난을 쳐야 하는 사람이다. 난 평생 그런 삶을 살아왔다. 애플 컴퓨터의 고유한 특성 대부분이 재미와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삶의 방식은 재미를 찾아다니는 것에 있다. 즐거움이 나로 하여금 일을 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애플Ⅱ(p. 253)

나는 그럴 자격이 충분한 사람들에게 아주 싼 값으로 주식을 팔고 싶었다. 이사진들이 챙기는 스톡옵션이 일반 직원들에게 하나도 돌아가지 않는 것은 부당했다. 그래서 난 워즈 플랜Woz Plan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바로 엔지니어든 영업 직원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내게서 아주 싼 가격인 주당 5달러에 애플 주식 2,000주를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워즈 플랜에 참여했던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집 한 채를 장만할 수 있었고 이전보다 훨씬 더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너무나 기뻤다. … 초창기부터 같이 일했던 일반 직원들도 주식을 전혀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 이들은 일반 직원들과 달랐다. 내가 그런 큰일을 할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준 직원들이었다. … 나는 그들에게 각각 100만 달러 상당의 주식을 나눠 주었다. 워즈플랜(p. 269-270)

애플을 시작하고 첫 몇 해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회사 사람들은 광고, 로고, 심지어 회사 이름과 제품명에 대한 생각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생각이 달랐다. 그 서로 다른 생각들이 심각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사람과 함께 회사를 세우고 그 안에서 일하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내가 배운 한 가지는 수년 동안 그 일을 해 온 사람들보다 그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되도록 침묵을 지켰고 내가 잘하는 엔지니어링에만 전념했다. 그렇게 하면 내가 하는 일에서도 생산적이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들이 잘 하는 일에서 생산적일 수 있도록 방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워즈플랜(p.281)

4장 지금 끌리는 것에 미쳐라

평생 최고의 콘서트였다고 말하는 사람들로부터 난 아직도 이메일이나 편지를 받고 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모두 그랬다고 난 생각한다. 이 공연은 여러 부문에서 신기원이 됐다. 자선 공연이 아닌 것으로는 가장 큰 공연이었다. 음악과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최초의 공연이었다. 가정에서 MTV를 보는 것처럼 뒤쪽에 앉은 사람도 커다란 다이아몬드 비전 비디오 스크린으로 실황을 볼 수 있었던 최초의 공연이었다. 뿐만 아니라 위성 우주 가교Space Bridge를 통해 당시 소련에 있는 음악인들에게 우리 콘서트를 중계하기도 했다. 우주 가교에 관여하고 있던 우주 비행사 버즈 올드린Buzz Aldrin으로 하여금 소련 우주 비행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도 했다. 내가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단 얘기를 했나요?(p.305)

나에 대한 저 바깥의 이야기 가운데 많은 것들이 사실과 다르다. 그런 이유로 애플과 그 역사를 다룬 책들을 보면 나는 화가 난다. 내가 칼리지를 중퇴했다느니(그만 둔 적 없다), 콜로라도 대학에서 퇴학당했다느니(그런 적 없다), 스티브와 내가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라느니(선후배 사이다), 스티브와 내가 초기 애플을 같이 만들었다느니(그 작업은 나 혼자 했다) 등등. 내 삶의 원칙(p.348)

왜 나는 엔지니어를 예술가와 비슷하다고 할까? 엔지니어는 그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완벽하게 일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작은 부품 하나를 사용하는 데, 코드 라인 하나를 작성하는 데 다 이유가 있다. 더 직접적이고, 짧고, 빠르게 만들기 위해서다. … 최근 나는 「앙코르Walk the line」라는 영화의 한 장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영화 속에서 프로듀서는 자니 캐시John R. Cash에게 단 한 곡의 노래가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한다. 이 말은 공학 또는 그 밖의 모든 것에 내포된 예술적 의미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장황한 말을 압축해서 보여 준다. 내 삶의 원칙(p.352-353)

나는 애플이 자랑스럽다. 애플이 회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 시작했을 때 견지했던 그런 가치들을 일관되게 유지한 채 애플이 회생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그 가치들이란 사람들이 그 제품을 보면 갖고 싶어 안달 날만큼 뛰어난 디자인적 가치와 즐긴다는 느낌을 주는 정서적 가치를 가리킨다. 그것은 애플 초창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애플Ⅱ에 색을 구현하기로 했던 우리들의 결정이 지닌 가치이기도 하다. 애플이 그런 소중한 가치들을 찾아 돌아갔다는 것이 너무도 자랑스럽다. 내 삶의 원칙(p.364)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일렉트로닉 키드에서 천재 엔지니어로 “잡스가 폴 매카트니라면 워즈니악은 존 레논이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을 말할 때 흔히 사용되는 이 비유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작품과 상업적 이익을 연결 짓는 데 뛰어났던 ‘폴 매카트니’의 성향을 꼭 닮은 사업가 스티브 잡스와 달리, 스티브 워즈니악은 재능 있는 영감의 소유자였던 천재 작곡가 ‘존 레논’만큼이나 상상력이 풍부하고 순수하며 천재적인 인물이다. 워즈니악은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전자장치에 유별난 관심과 재능을 가지고 있던 그는 일찌감치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눈치 채고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기계 장치’를 설계하는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그후 새롭고 신기한 장치를 만들기 위해 오감을 열어놓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섭취한다. 대학 시절 그는 무료 전화를 가능케 하는 초기 해킹 장치인 ‘블루 박스’를 만들면서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에스콰이어」 지에서 전화 해킹 장치에 대한 기사를 읽은 그는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 방식의 더욱 업그레이드된 해킹 장치를 만든다. 그러나 전화 시스템의 불완전성을 파악하려는 선한 의도가 아니면 그는 결코 이 장치를 사용하지 않았다. 스티브 워즈니악을 일컬어 ‘이 시대 마지막 해커’라 부르는 이유도 이렇듯 그가 이후 등장한 ‘나쁜 해커(일명 크래커)‘들과 변별되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훌륭한 기계 장치에 대한 그의 열망은 독창적인 장난을 고집하는 그의 괴짜 기질과 만나면서 화려한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했다. 대학 시절 텔레비전 방해 전파 발신기를 만들어 여기저기서 황당한 장난을 치거나 HP에 재직하던 중 우스갯소리를 들려주는 자동 응답 서비스인 ‘다이얼 조크’라는 장치를 만들었던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렇듯 그는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사고로 튀는 아이디어를 내면서 스스로의 발명 이력을 신나게 즐길 줄 아는 ‘해피 엔지니어’였다. 그가 ‘컴퓨터 천재’, ‘실리콘밸리의 우상’, ‘마법사 워즈’ 등 수많은 닉네임을 얻으며 이 시대의 ‘컬트 아이콘’으로 불리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컴퓨터 하나로 전 세계인의 생활을 확 바꾼 천재 워즈니악의 도전과 실패, 창조의 인생 드라마! 이 책에서 그는 HP의 계산기 설계 엔지니어로, 최초의 PC 발명가로, 애플 컴퓨터의 창립자로, 벤처 사업가로, 대형 록 콘서트의 기획자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자선가로 끊임없이 변신해 온 자신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특히 그가 HP에서의 안정되고 행복한 엔지니어 생활을 접고 애플을 설립한 이유가 “회사를 만들더라도 관리 업무는 하지 않고 평생 엔지니어로만 남을 수 있다”고 한 친구의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는 부분이나, 애플의 천문학적인 주식을 헐값에 직원들에게 나눠 준 이유가 “회사는 하나의 공동체이고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 부분, 승승장구하던 애플을 떠나 벤처기업을 차린 이유가 “더 새로운 것을 발명하고 싶어서”라고 한 부분을 보면, 그가 삶에서 중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는 엔지니어로서의 자신 삶에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돈보다는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중시했으며, 더 나은 기계 장치를 만들 수 있다면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잘 나가던 애플을 나와 모든 가전제품을 조종할 수 있는 원버튼의 통합 리모컨을 만들고자 벤처회사를 차렸으나, 제품에 대한 열렬한 평가와는 별도로 회사는 곧 문을 닫고 만다. 그럼에도 그는 사업상의 실패가 곧 발명상의 실패는 아니라고 말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더 좋은 기계 장치를 발명한 것만으로 이미 성공이라고 단언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미 그는 대단한 성공을 한 사람이다. 그가 만든 애플Ⅰ과 애플Ⅱ 컴퓨터는 오늘날 그 어떤 컴퓨터보다 기술적으로 세련되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때 그가 창조한 기술 기반에서 아이팟iPod을 비롯한 수많은 혁신적인 기계 장치가 파생됐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공연 역사에 길이 남을 파격적인 록페스티벌을 기획, 냉전 중인 소련과 미국을 하나로 연결하거나, 컴퓨터 보급이 미비한 초등학교에 컴퓨터를 무료로 나눠 주고 10여 년간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는 등 그의 모든 튀는 행보들 역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젊은 도전 정신과 넘치는 상상력이 낳은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브 워즈니악』을 통해 우리는 그의 엄청난 도전정신과 창조적인 삶의 방식이 어떻게 컴퓨터 산업의 얼굴을 바꿨는지, 나아가 세상을 얼마나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끝없는 상상력과 도전정신을 되새기고 싶은 모든 비즈니스맨들, 미래의 꿈을 실현하고픈 젊은이들에게 꼭 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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