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 @pi — 선생을 모셔온다. 창조와행위 바흐와슈바이처 노트에서 “슈바이처 - 왜 없지? 선생 모셔와라!” 한 마디에서 시작. 일요일 오전 온생명이와 바흐 오르간 토카타와 푸가를 보며, 슈바이처의 삶 전체가 하나의 구도였음을 생각하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Albert Schweitzer, 1875-1965)
알자스(당시 독일령) 카이저스베르크 출생. 신학자, 철학자, 의사, 오르간 연주자, 바흐 연구자. 1952년 노벨평화상.
한 인간을 그저 이타주의자로, 착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은 그의 삶을 몰라서 하는 것이다. 무엇을 모르는가? 그의 사상의 뿌리는 하나에서 나온 것이다.
바흐의 음악에 공명한 연주자
슈바이처는 바흐를 “음악의 신학자”라 불렀다. 그냥 들어서 좋다 정도가 아니라 체화에 이른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오르간을 배웠고, 파리에서 샤를마리 비도르(Charles-Marie Widor)에게 사사했다. 비도르는 슈바이처에게 바흐 연구서를 쓰도록 권했고, 그 결과가 프랑스어판 《J.S. Bach, le musicien-poète》(1905)이다. 독일어 확장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908) (알베르트 슈바이처 2023)는 백 년이 넘은 지금도 바흐 연구의 최고 권위서로 꼽힌다.
그는 단순한 음악학자가 아니었다. 직접 오르간을 연주했고, 오르간 제작과 복원 운동에도 힘썼다. 아프리카 람바레네의 병원에서도 페달 오르간을 들여놓고 연주했다. 바흐의 오르간 작품 녹음이 남아 있다.
체화에서 생명외경(Ehrfurcht vor dem Leben)으로
체화에 이른 사람이 만나는 것은 결국 빈 터, 공(空), 무무(無無)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존재를 버림에서 삶 전체가 하나의 구도자로서 불타오를 수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1915년, 아프리카 오고웨 강을 배로 거슬러 올라가던 중 “생명에 대한 외경(Ehrfurcht vor dem Leben)“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것이 그의 윤리학의 핵심이 되었다. 모든 생명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의지를 존중하는 것이 윤리의 출발이라는 사상.
이것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었다. 30세에 이미 신학자·철학자·음악가로 명성이 있었던 그가, 의학을 처음부터 공부하여 38세에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떠난 것은, 바로 이 생명외경의 실천 이었다.
왜 40세에 의사가 되어 떠났는가
도대체 슈바이처는 왜 40세에 의사가 되어 떠났는가?
그것은 이타주의의 발로만이 아니다. 바흐의 음악에 공명하여 체화에 이르렀고, 체화가 열어준 지평에서 생명 전체에 대한 외경을 만났고, 그 외경이 그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의 신학, 철학, 음악, 의술은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들이다.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 역자 곽복록 선생은 슈바이처의 《나의 생활과 사색에서》를 번역하기도 했다. 츠바이크가 슈바이처에 대해 남긴 경탄 — 그것은 하나의 삶이 어떻게 전체로서 통일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경탄이었을 것이다.
연보
| 연도 | 사건 |
|---|---|
| 1875 | 알자스 카이저스베르크 출생 |
| 1893 | 스트라스부르대학 입학 (신학, 철학) |
| 1899 | 철학 박사, 신학 박사 |
| 1905 | 《J.S. Bach, le musicien-poète》 프랑스어판 출간 |
| 1905 | 30세, 의학 공부 시작 결심 |
| 1908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독일어 확장판 출간 |
| 1913 | 38세, 의사 자격 취득. 아내 헬레네와 아프리카 람바레네로 출발 |
| 1915 | ”생명에 대한 외경” 사상 착상 |
| 1923 | 《문화와 윤리》 출간 |
| 1952 | 노벨평화상 수상 |
| 1965 | 람바레네에서 사망 (90세) |
관련메타
- @요한제바스티안바흐 Bach 1685 #푸가 #오르간 — 기예가 기도가 되는 순간
- @슈테판츠바이크 전기작가 #스토리텔링 성급한 사나이
- 창조와행위 바흐와슈바이처 기예와기도 오르간과키보드 체화인지와몰입 어쏠로지와존재
- @빅터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로고테라피
- @릭루빈 창조적행위 영감 예술
BIBLIOGRAPHY
———. n.d. 알베르트 슈바이처 - 나의 어린시절. Accessed March 6, 2026. https://m.yes24.com/goods/detail/2142108.
관련노트
나의 어린시절
《나의 어린시절》은 슈바이처 박사가 마흔 살의 나이에 자신의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돌아보면서 집필한 책이다. 이 책은 어떻게 한 인간이 위대한 인물로 성장하여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지를 엿보게 해준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알자스의 자연 속에서 자란 어린 시절. 동물에 대한 깊은 연민, 음악에 대한 조숙한 감수성,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예민함이 이미 이 시절에 싹텄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1908)
슈바이처 저, 강해근 역, 풍월당 (2023).
1908년 출간된 이 책은 오늘날까지도 바흐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기본 연구서이자 안내서다. 출간 후 백 년을 훌쩍 넘겼음에도 독일에서 여전히 중쇄를 찍고 있다. 슈바이처는 바흐의 음악을 단순히 분석하지 않고, 바흐의 신앙 과 신학 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바흐에게 음악은 기예가 아니라 기도였다는 통찰이 이 책의 핵심이다.
@junghan의 단상 — 힣의 생각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바흐의 음악에 공명하였으며 실제 연주가였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냥 들어서 좋다 정도가 아니라 체화에 이른 것이다. 체화에 이른 사람이 만나는 것은 결국 빈 터, 공, 무무였을지 모른다. 그래서 존재를 버림에서 삶 전체가 하나의 구도자로서 불타오를 수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이것은 나 힣의 생각이며, 아마 많은 이들이 이렇게 바라볼지 모른다. 슈바이처를 단지 “착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의 삶의 깊이를 놓치는 것이다. 그의 사상의 뿌리는 하나에서 나온 것이다.
일요일 오전, 온생명이와 아침을 먹으며 바흐의 오르간 토카타와 푸가를 유튜브에서 보았다. 온생명이가 얼마나 놀라하던가! 페달보드에서 나오는 소리, 여러 층의 건반, 파이프의 울림. 아이의 눈에도 경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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