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2025-06-14 Sat 11:17] 리디북스 구입
  • [2025-06-07 Sat 07:39] ok

#책꼽문#인용#문장수집

@벵하민라바투트 “우리는 책과 함께 불타야 한다”

[2024-10-18 Fri 11:53]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서면 인터뷰

https://ch.yes24.com/Article/View/55259

질문 마지막으로 세상이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지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quote

분노하고, 움츠리고, 기뻐하고, 축복하고, 떨어야 합니다. 경외감을 느낄 때 우리는 이 이외 또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요? 경외감은 제가 아는 지루함과 우울증에 대한 유일한 해독제입니다. 그리고 책은 그것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해야 합니다. 책은 불타야 하고 우리는 책과 함께 불타야 합니다.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2024)

  • The MANIAC

“지금 우리가 만드는 괴물은 역사를 바꾸겠지, 미래에도 역사라는 게 남아 있다면 말이야!” - 존 폰 노이만

에렌페스트, 폰 노이만, 파인먼, 그리고 이세돌과 AI…… 과학사와 세계사를 뿌리째 뒤흔든 ‘폭발적 지성’을 만나다!

2021 부커상 최종 후보작이자 전 세계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며 화제를 모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의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가 또 하나의 문제작을 들고 찾아왔다. 전작이 현대 과학계에 지각변동을 몰고 온 여러 과학자들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신작 『매니악』은 1. 파울 에렌페스트(물리학자) 2. 존 폰 노이만(수학자 · 물리학자 · 컴퓨터과학자) ③이세돌(바둑 기사)의 내면과 행동, 그로 인해 격변하는 세계에 초점을 맞춘 소설로,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실에 근거한 허구로 쓰여진 논픽션소설이다.

이야기는 에렌페스트의 비이성(불확정성 · 양자역학)의 발견으로 시작되어 → 폰 노이만에 의해 매니악 컴퓨터가 발명되고 → 그것이 더욱 발전되어 지금의 AI(알파고)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어내며 전개된다. 특히 3부 대미를 장식하는 이세돌 파트는 바둑과 AI라는 과거와 현재가, 동양과 서양이, 인간과 기계가 충돌-대결하는 격전장이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히 펼쳐진다.

매니악[MANIAC]

  1. 미치광이, -광
  2. 수학 분석기와 숫자 적분기 및 계산기(Mathematical Analyzer,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의 줄임말로, 존 폰 노이만이 만든 컴퓨터의 이름
  3. 세계사에 격변을 일으킨 천재들의 광기 어린 정신세계로 당신을 안내하는 이 소설의 제목

1부 파울 또는 비이성의 발견

2부 존 또는 이성의 광기 어린 꿈

1장 논리의 한계

2장 공포의 위태로운 균형

3장 기계 안의 유령들

3부 세돌 또는 인공지능의 망상

책 속으로

파울은 넬리가 말한 피타고라스학파의 현자와 자신이 묘하게 이어져 있다는 확신을 품게 되었고, 그때부터 사방에서 부조화와 격동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우주를 다스리는 합리적인 질서나 자연법칙, 반복적인 패턴을 더는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혼란투성이에 부조리로 오염되고 그 이면에서 유의미한 지성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과도하게 증식하는 거대한 세상뿐이었다. (…) 그뿐만 아니라, 다들 혁명적이라고 떠들어대지만 그의 눈에는 물리학의 산업화에 불과한 생각들로 넘쳐나는 동료들의 논문과 강의에서 비이성의 존재를 더더욱 선명하게 식별했다. 파울은 아인슈타인에게 편지를 보내 낭패감을 토로하며 어찌된 영문인지 이성을 정반대 것으로 혼동해버린 어둡고 무의식적인 힘이 과학 세계관 속으로 기어들고 있다고 한탄했다. --- p.28

폰 노이만의 박사논문은 장차 그가 연구에 일관되게 적용할 스타일을 일찌감치 보여주었다. 주제에 와락 덤벼들어 가장 기본적인 공리만 남도록 발가벗긴 다음, 자신이 분석하는 것이 무엇이든 순수 논리의 문제로 바꿔버리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었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볼 줄 아는 초현실적인 능력, 거꾸로 말하자면 오직 기본만을 보는 특유의 근시안은, 그가 가진 천재성의 비결인 동시에 흡사 어린애 같은 도덕적 무지의 이유였다. --- p.105

그는 작은 악마였지만 닥쳐오는 광기를 보고 늦지 않게 독일에서 탈출한 사람들에게는 천사였다. 내가 가르칠 때 그가 아직 어린 소년이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커서는 딴판이 되었으니까. 물론 그는 수학계의 거물이었으나 신은 알고 계실 것이다. 그가 얼마나 어리석고 또 위험한지를! 모순덩어리. 동시에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총명하지만 유치하고, 통찰력이 넘치지만 놀랄 만큼 얄팍한 사람. --- p.106

수학이란 신의 정신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숭배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수학에는 진정한 힘이 깃들어 있으며, 그 힘은 손쉽게 악용될 수 있다. 그 힘은 오직 인간만이 소유한 능력에서 탄생했는데, 은혜로운 우리의 신은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과 발톱 대신에, 그만큼 위험하고도 치명적인 힘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 그가 가진 능력이란 참으로 진귀하고 아름다워서 지켜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 나는 그것을 보았지만, 다른 것도 보았다. 우리 모두를 묶어두는 자제력을 상실한, 사악하고 기계 같은 지성. 그런데 왜 침묵했느냐고? 그가 너무 우월했으니까. --- p.111

괴델의 정신쇠약에 관해서는 워낙 기록이 많지만, 그가 앓았던 유형의 편집증이 그가 몰락한 원인인 동시에 수학적 위업의 뿌리였다는 데는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빈대학교에서 아주 젊은 시절의 괴델을 보았던 어느 교수는, 그가 불안정한 이유가 연구의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애당초 불안정한 상태여야 괴델처럼 사고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두 관점 다 옳다고 본다. (…) 야노시와 괴델 사이에는 여러 가닥의 끈이 비밀스럽게 이어져 있었다. 몇 피트 간격으로 같은 묘지에 묻혔으니 죽어서도 연결되었다 하겠다. 괴델의 위대한 생각에 대한 야노시의 반응은 처음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로 인해 야노시의 원대한 프로젝트가 망가지고 말았으나, 그렇다고 실의에 빠지는 건 야노시답지 않았다. 그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굴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분명 그를 바꾸어놓았다. 그것도 아주 송두리째.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 p.124~125

핵 딜레마에 그가 내놓은 대답은 그의 최고와 최악의 모습을 완벽히 반영하고 있었다. 빈틈없이 논리적이면서 완벽히 반직관적이고, 사이코패스의 경계에 걸쳐 있을 만큼 철저히 이성적인 모습. 많이들 모르는 사실이지만, 남편은 인생을 순전히 게임으로 보았다. 얼마나 치명적이고 심각한지와 무관하게, 인간의 모든 활동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 내가 이를 아는 이유는, 나의 사랑스러운 남편이 인간 역사상 손꼽히게 위험한 생각을 떠올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발상은 너무나도 사악하고 냉소적이었기에 그로부터 우리가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다. --- p.165~166

그는 그래서 그 기계를 만들었다. “이런 종류의 장치는 아주 획기적으로 새로운지라 실제 작동된 후에야 쓸모의 상당 부분이 선명해질 거요.” 그가 내게 한 말이다. 그는 알았던 것이다. 진짜 문제는 기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기계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임을. 그리고 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우리는 조니에게 참 많은 빚을 졌다. 조니는 우리에게 단순히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기술의 돌파구만 마련해준 게 아니었다. 그는 자기 정신의 일부를 남겼다. 우리가 이 기계에 붙인 세례명은 수학 분석기와 숫자 적분기 및 계산기(Mathematical Analyzer,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였다. 짧게 하면, 매니악(MANIAC). --- p.192

그는 자기 생각에 서린 위험을 못 보았을 테지만, 나는 ‘보통 사람’으로서 지극히 예외적인 사람과 함께 사는 게 어떤지를 몸소 경험했다. 연치의 곁에서 자란 만큼 그게 어떤 기분인가를 똑똑히 알았다. 내로라하는 과학자들과 사상가들이 그의 앞에서 주눅이 들고 말문이 막히는 모습을, 그의 우월함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 그자들은 자신들이 몇 달, 아니 몇 년을 공들여 이룩한 것을 연치가 단 몇 분 만에 앞지르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았다. 미래의 기술이 창조해낼 ‘신’은 내가 그의 앞에서 느끼는 감정을 우리 모두에게 느끼게 할 터였다. 하지만 그는 그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 인류의 번영을 바라는 자신의 소망이 인류를 파멸할 수도 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 이를테면, 인간 사고 구조와 디지털 컴퓨터 작동 방식의 유사점을 연구하는 데 매진했다. --- p.268~269

알파고의 이상한 알고리즘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또 알파고의 능력치가 어디까지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직전의 흑돌 15수가 정말 그렇게나 조잡하고 아마추어스러웠나? 딥마인드 프로그래머들조차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알파고는 누구의 감독도 받지 않고 철저히 스스로 결정을 내렸고, 인간들은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데미스 허사비스는 대국이 있기 한참 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이 기계를 프로그래밍하긴 했습니다만, 어떤 수를 둘지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건 훈련으로 비롯된 창발 현상(emergent phenomenon)이니까요. 우리는 그저 데이터 세트와 훈련 알고리즘을 생성할 뿐입니다. 알파고가 선택하는 수는 우리 손을 떠난 것이며, 우리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보다 월등합니다. 그러니까 이 프로그램은 본질상 자율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 p.365

이세돌은 알파고에게 패한 뒤 몇 달을 내리 모든 대국에서 승리했다. 누군가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본능에 기대지 말 것. 최대한 치밀하게 계산할 것.” 잇따른 우승과 새로운 경기 스타일로 몇 년은 더 화려하게 커리어를 이어갈 듯했던 이세돌은 2019년 11월, 돌연 은퇴를 발표해 세상을 충격에 빠뜨렸다. (…) 고별전에서 이세돌은 어느 때보다 호기롭게, 오랜 친구이자 라이벌인 구리나 국제무대에서 기세등등하던 라이징 스타 커제가 아닌, 한국 NHN 엔터테인먼트사가 개발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한돌과 맞붙기로 했다. --- p.399~400

출판사 리뷰

양자역학의 부상-컴퓨터의 탄생-AI 혁명 누구도 예상 못한 ‘세상의 창조’는 누구도 짐작 못할 ‘지성의 붕괴’에서 시작되었다!

과학사의 천재들, 우리와 다른 외계인…… 감히 범접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천재들의 머릿속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것이다. 실제로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의 뇌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그의 두뇌가 일반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맥 빠지는 사실만 확인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진 사고는 분명 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그렇다면 천재들의 머릿속에선 대체 어떤 생각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고, 그 과정이 새로운 창조로 이어지는 걸까?

『매니악』에서 펼쳐지는 천재들의 광기 어린 정신세계는 그 의문에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인간의 뇌’로는 감당할 수 없는 ‘폭발적 지성’은 결국 붕괴로 이어졌고, 그 붕괴는 ‘새로운 창조’의 폭발을 낳았음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유토피아인가, 아포칼립스인가? 인류를 이긴 최초의 컴퓨터가 탄생하기까지, 천재들의 격돌과 고뇌를 추적하다

실존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어둡고 매혹적인 소설에서 라바투트는 과학기술이 폭압적 힘이 되는 것을 보고 절망에 빠진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로부터 시작해, 100년 후 한국의 바둑 고수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로 마무리되는 3부작의 중심에 존 폰 노이만을 배치했다. 즉 『매니악』은 폰 노이만 프로젝트의 핵심 질문, 즉 ‘인간의 이해나 통제를 넘어 진화하는 지능을 가진 자기 복제 기계의 탄생은 가능한가’에 대한 답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비록 그 야심찬 프로젝트는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후대 학자들의 도전으로 이어져 인류사에 또다른 족적을 남겼다.

세상에 없는 것, 완전히 새로운 것,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하는 결정적인 것을 향한 천재들의 광기 어린 지성이 폭발한 순간,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매니악과 핵무기, 인간 발명품 중 가장 독창적인 물건과 가장 파괴적인 물건이 정확히 동시에 탄생했고, 결국 인류는 파국을 향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다. 『매니악』에서 우리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가담했던 천재들의 고뇌와 격돌, 갈등과 갈망을 보다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되며, 영화 [오펜하이머]에 미처 담기지 못한 과학자들의 민낯을 확인하게 된다.

그들이 진정 꿈꿨던 것은 유토피아였을까, 아포칼립스였을까. 이에 대한 답은 명확히 내릴 수 없지만, 이후 존 폰 노이만이 그토록 꿈꾸고 갈망했던 ‘스스로 생각하고 진화하는 기계’ 알파고의 탄생은 세계사를 뒤흔든 위대한 창조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고뇌, 노력과 땀이 바쳐지는지를 드러내며, 새삼 놀라움과 감탄을 선사한다.

픽션과 논픽션 사이 아찔한 줄타기, 그 끝에 찾아오는 압도적 전율! 이 책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양자역학이 물리학의 고전 체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시기, 파울 에렌페스트는 고전 물리학의 오래된 확실성이 무너지면서 발견된 비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이것을 “정신 나간 이성, 과학의 영혼을 따라다니는 유령”이라고 묘사한다.

극도로 비인간적인 형태의 이 지성은 인류의 가장 깊은 욕구에 철저히 무관심했다. 파울은 이 정신 나간 이성, 과학의 영혼을 따라다니는 유령을 보았다. 형체 없는 망령 같기도, 악령 같기도 한 그 존재는 회의와 학회에 참석한 동료들의 머리 위를 떠다녔고, 동료들이 방정식을 적어내려갈 때 어깨 너머로 빼꼼 구경하다 슬그머니 옆구리를 찌르곤 했다. 실로 사악한 이 힘은, 논리적인 동시에 지독하게 비이성적이었고, 아직은 다 자라지 않아 잠잠했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하루빨리 세상에 뛰어들고 싶어 안달이 난 채로, 초인적 힘과 신과 같은 통제력을 주겠다는 속삭임으로 똑똑한 사람들을 꾀어냄으로써, 기술을 매개로 우리 삶에 덤벼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_ 본문 37쪽

에렌페스트의 경고는 『매니악』의 전체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책은 이와 같은 천재들이 어떻게 눈부시고 파괴적인 결과로 그 유령을 풀어놓기 시작했는지를 탐구한다. 그리고 1933년 나치가 권력을 잡았을 때 자신과 아들을 살해한 에렌페스트의 죽음에 대한 짧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끝난 후, 우리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기여하고 현대 컴퓨팅의 기초를 놓았으며(‘매니악’은 그가 개발한 컴퓨터의 이름이다)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예견한 존 폰 노이만을 만난다.

천재적인 재능으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폰 노이만은 게임이론과 최초의 프로그래밍 가능 컴퓨터를 발명하고 AI, 디지털 라이프, 세포 오토마톤을 개척하는 등 그가 손댄 모든 분야를 혁신했다. 폰 노이만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현대 문학의 가장 흥미진진한 새로운 목소리 중 하나로, 이 책 『매니악』은 그의 독특한 유산이 20세기의 꿈과 악몽 그리고 AI의 초기 시대에 미친 영향을 추적한다.

“어떻게 기계가 스스로 생명을 얻어 살아갈 수 있는가? 튜링이 그의 기계를 구상한 것처럼 나도 이 문제를 철저하게 공식화할 수 있을 것 같네.” 연치는 죽기 몇 달 전 내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알레프제로(Aleph- zero)라고 명명한 일종의 자동기계가 존재하며, 이는 다음과 같은 속성을 지니는데, 만일 당신이 알레프제로에게 무엇에 관한 서술을 제시하면 그 정보를 흡수해 두 개의 사본을 생성한다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증명할 계획을 이미 세웠다고 했다. _ 본문 294쪽

프로그램은 인간 경험에 전혀 의지하지 않은 채 이 모든 게임을 통달했다. 규칙만 알려주고 스스로 플레이하도록 내버려둔 것이 다였다. 처음에는 무작위로 수를 두었으나 금세 무찌를 수 없는 존재로 진화했다. 이제 그것은 바둑과 체스와 쇼기에서 세계 최강의 존재가 되었다. 그것의 이름은 알파제로이다. _ 본문 406쪽

핵 시대 설계자들의 정신을 살펴보면 오늘날 인공지능을 향한 쟁탈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폰 노이만을 비롯한 과학자들의 경쟁심, 오만함, 굶주린 호기심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AI 선구자들이 위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그토록 열심인 이유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책의 마지막은 데미스 허사비스가 탄생시킨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역사적 대국을 다루는데, 에렌페스트에서 시작해 폰 노이만을 거쳐 알파고로 이어지는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은 충격적이고 압도적인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훗날 역사가들이 우리 시대를 돌아보며 진정한 인공지능이 처음 반짝인 순간을 고른다면, 아마도 2016년 3월 10일 이세돌과 알파고의 두번째 대국에 놓인 단 하나의 수, 바로 37수가 놓인 순간을 택할 것이다. 그것은 어느 컴퓨터도 둔 적이 없는 수였다. 인간이 고려할 법한 수도 아니었다. 새로웠고, 수천 년간 축적된 지혜와의 급진적 결별이자 전통과의 완벽한 단절이었다. _본문 360쪽

전 세계의 관심을 모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세돌의 패배는 인류의 패배였을까? 컴퓨터가 지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진 시대,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의 힘과 잠재적 위험에 대한 통찰력을 선사하는 책”(라이브러리 저널) “AI가 트럭 운전사부터 개발자까지 모든 사람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 위기에 처한 오늘날, 책이 건네는 질문은 그 어느 때보다 불편하게 느껴진다”(애틀랜틱) 같은 해외 서평에서 볼 수 있듯, 이 책은 과학자들의 오랜 고민과 노력이 낳은 ‘새로운 창조’가 우리의 세상을 어떻게 격변시킬지에 대해 일종의 선전포고이자 경고인 셈이다. 하지만 『매니악』은 동시에 인류가 품을 수 있는 희망 역시 보여준다.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긴 회심의 일격, ‘신의 한 수’는 단순히 바둑의 수를 넘어 인류가 지닌 힘과 희망의 극적인 상징이다.

“0.0001.” 주니어 연구원이 대답했다. 침묵이 흘렀다. 만분의 일. 두번째 대국에서 알파고가 획기적인 37수를 두며 바둑계에 존재감을 알렸을 때 자신의 수에 부여한 확률과 정확히 똑같았다. 결국엔 알파고 네트워크도 중국 프로 기사 구리가 이세돌의 수에 붙인 이름을 인정한 셈이었다. 그것은 실로 신들린 움직임, 신의 손길이 닿은 한 수였다. 인간은 만 명 중에 단 한 명만이 떠올릴 수 있었던 수. 이세돌의 끼움 수에 알파고가 허둥댄 것은 그래서였다. 인간의 경험치를 훌쩍 뛰어넘은 것은 물론, 알파고의 무한해 보이는 능력조차 초월한 수였으므로. 서로 마주한 이세돌과 컴퓨터는 바둑의 한계를 뛰어넘어 낯설고 끔찍한 아름다움을, 이성보다 강력한 논리를 펼치며 머나먼 곳까지 파문을 일으켰다. _본문 393쪽

라바투트는 이 모든 것을 인상적인 솜씨로 처리하며, 복잡한 아이디어를 길고 우아한 문장으로 풀어내어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서평처럼 “중독성 강한 흥미를 유발하는 음울하고도 강렬한 내러티브”를 담은 책이며,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평처럼 “누구도 이 책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2022)

#부커상후보작” 노승영

칠레의 젊은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의 세번째 작품으로, 2021 부커상 최종심에 오르며 전 세계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논픽션소설이다. 책에 실린 다섯 개의 글은 개별적이면서도 나선처럼 이어지며 하나의 산문적 명상으로 완성되어간다. 인간의 정신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한계일까

“나의 물리 영웅들이 바로 눈앞에서 이야기하는 착각에 빠졌다. 신박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단어가 아닐까.” _김상욱(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 슈바르츠실트, 슈뢰딩거, 그로텐디크, 모치즈키 신이치…

오늘의 세계를 규정한 위대한 정신들이 맞닥뜨린 황홀한 깨달음과 지적 파열의 순간을 절묘하게 그려낸 문제작!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칠레의 젊은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의 세번째 작품으로, 2021 부커상 최종심에 오르며 전 세계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논픽션소설nonfiction-novel이다. 논픽션소설이란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처럼 객관적 사실에 소설적 허구를 장치로써 도입하는 작품을 가리킨다. 책에 실린 다섯 개의 글은 개별적이면서도 나선처럼 이어지며 하나의 산문적 명상으로 완성되어가는데, 그 안에 담긴 프리츠 하버,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슈바르츠실트, 그로텐디크 같은 과학 세계에 지각 변동을 몰고 온 화학자, 물리학자와 수학자 들의 정신적 경험과 들끓는 지적 욕망, 치열한 이론 논쟁은 강렬하기 그지없다.

또한 이 책은 흔히 떠올리게 되는 현대 과학의 엄청난 진보와 그것이 몰고 올 파국을 경고하는 일반적인 과학 논픽션과도 다르고, 위대한 인물의 업적을 기리는 전기적 소설과도 완전히 다르다. 그보다는 깜짝 놀랄 만큼 독창적인 서사 구조와 지적인 견고함이 문장 사이사이에서 유려하게 어우러지며 인간의 정신이 가닿는 끝에서 경험하는 현저한 깨달음의 순간(에피파니)과 신경 쇠약을 숨막히도록 아름답게 그려낸 독보적인 작품이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서구의 작가와 문학평론가, 독자들의 열렬한 찬사가 이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작품의 맨 마지막에 실린 「감사의 글」에 이르러서조차 전율할 수밖에 없다.

프러시안블루

슈바르츠실트 특이점

심장의 심장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밤의 정원사

책 속으로

디펠의 영약에 들어 있던 성분에서 탄생한 파란색은 결국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파도 아래〉에서뿐 아니라 마치 이 색깔의 화학 구조에 들어 있는 무언가가 폭력을 유발하기라도 하는 듯 프로이센군의 제복에서도 빛난다. 그 무언가는 저 연금술사의 실험에서 이어져내려온 과오, 그늘, 실존적 얼룩이었다. --- p.22~23

처음에는 슈바르츠실트 본인조차 이 결과를 수학적 기현상으로 치부했다. 하긴 물리학은 종이 위의 숫자에 지나지 않는 것, 현실의 사물을 표상하지 않는 추상, 단순한 계산 착오로 가득하지 않던가. 그의 결과에 들어 있던 특이점은 실수, 기현상, 비현실적 환각 중 하나가 분명했다. --- p.48

전쟁의 아수라장에서도 특이점은 얼룩처럼 그의 마음속에 퍼져 참호의 지옥도를 덮었다. 진흙 구덩이에 파묻힌 죽은 말의 눈에서, 동료 병사의 총상에서, 흉측한 가스 마스크의 뿌연 렌즈에서 그는 특이점을 보았다. 그의 상상력은 자신이 발견한 결과에 매혹되었다. --- p.49~50

“가장 작은 아이조차 손가락 하나로 태양을 가릴 수 있다니 우주는 얼마나 신기하고 광학과 원근법의 법칙은 얼마나 변덕스러운가!” --- p.55

“나는 종종 하늘에 충성을 다하지 못했다. 나의 관심은 결코 달 너머 우주에 있는 것들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사이로 누벼진 실들을, 인간 영혼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좇았다. 그곳이야말로 과학의 새로운 빛이 비쳐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 p.58

하이젠베르크는 그들이 전부 틀렸음을 알고 있었다. 전자는 파동도 입자도 아니었다. 아원자 세계는 그들이 이제껏 알고 있던 그 무엇과도 달랐다. 이것은 그에게 절대적으로 확실한 사실이었다. 확신이 어찌나 깊던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 p.120

“고작 흙 입자 하나에 원자 수십억 개가 들어 있다면 대체 어떤 방법을 써야 그토록 작은 것에 대해 유의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나?” 시인과 마찬가지로 물리학자 또한 세상의 사실들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와 정신적 연결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 p.125

핵이 작은 태양이고 전자들이 행성처럼 그 주위를 공전하는 유치하고 단순한 이미지를 하이젠베르크는 혐오했다. 그가 상상하는 원자에서는 이런 정신적 표상이 사라졌다. --- p.127

이 한계들은 결코 이론상의 한계가 아니다. 모형의 결함이나 실험의 한계, 기술적 제약이 아니다. 과학이 연구할 수 있는 범위 바깥의 ‘현실 세계’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하이젠베르크가 설명했다. --- p.224~225

[아인슈타인은] 세상의 사실들이 상식과 그토록 상반된 논리를 따른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자연법칙이라는 관념을 버리고서 우연을 왕좌에 앉힐 수는 없었다. --- p.226

슈뢰딩거도 양자역학을 혐오하게 되었다. 그는 정교한 사고 실험(게당켄엑스페리멘트)을 고안하여 불가능해 보이는 생물을 탄생시켰다. 그것은 살아 있는 동시에 죽은 고양이였다. 그의 취지는 이런 사고방식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 p.229

출판사 리뷰

장면 1. 프러시안블루, 빛과 그늘

라바투트는 첫번째 글에서 등장하자마자 유럽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킨 안료 프러시안블루를 최초로 합성해낸 연원과 그 치명적 부산물인 시안화물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시안화물은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사용된 독가스 치클론B의 시원이기도 하며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패망을 예감한 독일 장성들이 자살할 때 사용한 약물이기도 했다.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 역시 동성애라는 죄목으로 영국 정부에 의해 강제로 화학적 거세를 당해 가슴이 커지는 부작용을 겪은 뒤 시안화물을 주입한 사과를 깨물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일부 벽은 지금도 치클론B로 인해 푸른색으로 물들어 있다.

디펠의 영약에 들어 있던 성분에서 탄생한 파란색은 결국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파도 아래〉에서뿐 아니라 마치 이 색깔의 화학 구조에 들어 있는 무언가가 폭력을 유발하기라도 하는 듯 프로이센군의 제복에서도 빛난다. 그 무언가는 저 연금술사의 실험에서 이어져내려온 과오, 그늘, 실존적 얼룩이었다. _본문 22~23쪽

프러시안블루의 기초가 된 화학 합성물을 만든 이는 극단적으로 잔인한 동물 실험으로 악명 높았던 연금술사 요한 콘라드 디펠로, 메리 셸리의 걸작 『프랑켄슈타인』에 영감을 선사한 인물이다. 한편 1차대전 당시 독일의 무지막지한 독가스 공격을 주도한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공기 중에서 질소를 추출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고, “공기에서 빵을 끄집어낸 사람”으로 칭송을 받기도 했다. 그의 발견 덕에 질소 비료를 무한히 만들 수 있게 되어 전 세계 인류가 기아에서 해방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는 죽어가면서 자신의 발견으로 인류 대신 식물이 미래의 지구를 지배할까봐 두려워했다.

장면 2. 최초의 특이점

전쟁이 한창이던 1915년 12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러시아 전선 참호에서 발송된 편지를 받는다. 편지를 쓴 사람은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자 독일군 중위 카를 슈바르츠실트였다. 그 편지에는 일반상대성 방정식에 대한 최초의 정확한 해가 쓰여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방정식에 관한 이론을 발표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때였다. 슈바르츠실트의 해는 정확했으며 항성의 질량이 주변의 시공간을 구부리는 방식을 완벽하게 기술했다. 그러나 슈바르츠실트의 해는 무언가 기묘한 것을 드러냈다. 슈바르츠실트의 해를 붕괴하기 시작한 별에 적용하면, 그 밀도와 중력은 무한히 증가해 시공간을 찢는 특이점을 형성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슈바르츠실트의 해에 열광하면서도 그것이 물리학을 토대에서부터 파괴할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틀렸고 블랙홀은 존재한다. 슈바르츠실트는 자신의 발견에 끝없이 매혹되면서도 불안해하며 블랙홀의 존재를 엿본 최초의 인류였다.

처음에는 슈바르츠실트 본인조차 이 결과를 수학적 기현상으로 치부했다. 하긴 물리학은 종이 위의 숫자에 지나지 않는 것, 현실의 사물을 표상하지 않는 추상, 단순한 계산 착오로 가득하지 않던가. 그의 결과에 들어 있던 특이점은 실수, 기현상, 비현실적 환각 중 하나가 분명했다. _본문 48쪽

그의 상상력은 자신이 발견한 결과에 매혹되었다. 만에 하나 특이점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주의 종말까지 지속될 것임을 두려운 마음으로 깨달았다. (…) 그것은 여느 천체와 달리 어떤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이중으로 탈출이 불가능했다. 특이점은 기묘한 기하학적 공간을 만들어내 시간의 양끝에 자리잡았다. 특이점으로부터 가장 먼 과거로 달아나거나 가장 먼 미래로 탈출하더라도 다시 한번 특이점을 마주칠 뿐이었다. _본문 50쪽

장면 3. 국적 없는 수학자와 수학의 심장

2012년 8월 31일 오전 일본의 수학자 모치즈키 신이치는 자신의 블로그에 논문 네 편을 발표했다. 600쪽에 이르는 이 논문들에는 정수론에서 가장 중요한 추론 중 하나인 ‘a+b=c’의 증명이 실려 있었다. 이날까지도, 그의 증명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_본문 77쪽

소위 ABC추론으로 알려진 정수론 난제에 대한 증명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일본의 수학자 모치즈키 신이치는 어렸을 적부터 뛰어난 집중력의 소유자였다. 열여섯 살에 프린스턴대에 입학해 스물세 살에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후 교토대 수리해석연구소에서 강의는 하지 않으면서 연구에만 전념하는 교수로 부임했다. 2000년대 초부터는 국제 학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는데, 2014년 프랑스 몽펠리에대학교에서 자신의 ABC추론 증명에 대한 강연을 하기로 했으나 돌연 강연을 취소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블로그에 올린 증명을 모두 삭제해버렸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그로텐디크의 저주에 걸렸다고 했다. 알렉산더 그로텐디크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수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 부모는 혁명적 무정부주의자들로 스페인내전 당시 국제여단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그로텐디크는 어머니와 프랑스 난민 수용소를 전전하며 프랑스에서 학교 공부를 시작했다. 수학 천재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으나 프랑스 68혁명 시기를 전후로 사회운동에 전념하며 일체의 학문적 활동을 접고 점차 은둔하기 시작했다. 청년 시절의 모치즈키 신이치는 그로텐디크가 ‘수학의 심장부’에서 발견한 실체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장면 4. 불안한 확률로서 존재할 뿐이다: 더 볼수록 덜 보인다

하이젠베르크가 보기에 슈뢰딩거의 제안은 용납할 수 없는 뒷걸음질이었다. 고전 물리학의 방법을 써서 양자 세계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원자는 한낱 구슬이 아니다! 전자는 물방울이 아니다! 슈뢰딩거의 방정식이 정확하고 심지어 유용할지도 모르지만 물질이 가장 작은 규모에서 극단적으로 기이하게 행동하는 현상을 무시하는 건 가장 근본적인 잘못이다. 하이젠베르크를 격분시킨 것은 파동 함수가 아니라?어차피 그게 뭔지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원리의 문제였다. 그는 슈뢰딩거의 재주가 아무리 모든 사람을 매혹시켰더라도 이것이 막힌 길임을, 참된 이해로부터 멀어지는 막다른 골목임을 알고 있었다. _본문 200~201쪽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네번째 글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이론이 정립되어가는 과정을 매혹적으로 그려낸다. 20세기의 천재 물리학자들인 슈뢰딩거, 드 브로이, 하이젠베르크가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쇠약을 견디며 양자 이론을 수립하고 서로의 주장을 치열하게 반박하며 역설적인 우주를 발견해가는 이야기는 최초의 증명을 위해 그들이 거칠 수밖에 없었던 어두운 심연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해준다. 견딜 수 없는 오류, 증명을 향한 끝없는 터널, 자신도 모르게 찾아낸 해결 공식이 기이한 환희와 절망 속에서 명멸하는 장면들이 쉽사리 형언하기 어려운 장관으로 펼쳐진다.

입자와 파동, 사실과 허구 사이

라바투트가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 속 인물과 이론,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치밀한 자료 조사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 빈틈을 매끄럽고 스릴 넘치는 소설적 허구로 메우고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밝히지는 않지만, 「감사의 글」에서 책의 구조와 방법론에 대한 단서를 남겨놓았다. 우리는 가짜 뉴스에 몸살을 앓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실과 허구는 과연 별개의 범주로 엄격히 다뤄질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인간이 지식의 한계를 어떻게 메워왔는가, 불가지한 자연을 어떻게 견뎌왔는가에 대한 하나의 아름다운 대답이다.

이 책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허구다. 뒤로 갈수록 허구의 비중이 커진다. 「프러시안블루」에는 허구의 문장이 하나밖에 없는 반면에 뒤에서는 더 자유분방하게 쓰되 각 작품에서 다루는 과학 개념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_「감사의 글」에서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저 : 벵하민 라바투트 (Benjamin Labatut

1980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나 헤이그, 부에노스아이레스, 리마에서 자랐다. 현재는 칠레에 정착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발표하는 소설마다 여러 문학상을 받았으며, 특히 2021 부커상 최종심에 오른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관련노트

BIBLIOGRAPHY

벵하민 라바투트. 2022.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부커상후보작. Translated by 노승영. 문학동네. https://m.yes24.com/Goods/Detail/110274164.

———. 2024. 매니악. Translated by 송예슬. 문학동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4719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