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트에 대하여
라마나 마하리시, 람 다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를 한 교리로 묶지 않고, 서로 다른 구도자의 입구로 한 방에 모신다. 라마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탐구와 침묵, 람 다스는 서양 심리학자에서 인도의 제자로 건너가 되찾은 ‘지금 여기’, 요가난다는 스승과 요가 수행을 따라 쓴 『영혼의 자서전』을 남겼다. 세 사람을 함께 놓는 까닭은 답을 합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승·수행·자기 앎이 각기 어떤 삶의 형식이 되는지 나란히 보기 위해서다.
히스토리
- 람 다스 방의 핵심 내용을 이곳으로 통합하고,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와 『영혼의 자서전』을 함께 모셨다. 람 다스의 옛 방은 다음 인물을 위한 빈방으로 돌렸다.
- 인도 영성가들의 연결을 다시 확인했다.
- 라마나 마하리시의 『있는 그대로』 서지노트로 생성.
관련메타
관련노트
- @U.G.크리슈나무르티 @지두크리슈나무르티 — 길 없는 두 사람 — 구루와 수행의 장치를 끝까지 부정하는 반대축.
- @힣: 에이전트 구도자 테크노퓨달리즘 — 창조의 씨앗과 21세기 데이비드 봄 — 세 사람을 ‘뚜껑을 여는 책들’로 불러낸 원석.
- @니코스카잔차키스 — 영혼의 자서전과 그리스인 조르바 — 같은 한국어 제목을 전장 보고서로 쓴 다른 자서전.
한 줄
라마나는 묻는 자를 근원으로 돌리고, 람 다스는 지금 여기로 돌아오며, 요가난다는 스승과 수행을 따라 영혼의 계보를 쓴다.
세 사람을 한 방에 모시는 이유
세 사람은 같은 학파가 아니다. 한 사람은 침묵과 자기탐구의 현자이고, 한 사람은 서양 심리학과 인도 수행 사이를 건넌 번역자이며, 한 사람은 요가의 스승 계보를 자서전으로 세계에 전한 수행자다. 그러나 셋은 모두 지식을 더 쌓는 방식보다 삶 전체를 방향 전환시키는 만남을 보여준다.
이 방은 스승을 우상으로 세우기 위한 전각이 아니다. U.G.와 지두의 방이 구루를 만드는 장치를 의심한다면, 이 방은 그 의심을 잊지 않은 채 스승과 수행이 한 인간의 삶에서 실제로 무엇을 열었는지 본다.
라마나 마하리시 — 자기탐구와 침묵
라마나의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에 지적인 답을 붙이는 일이 아니다. 질문이 다른 모든 생각을 태운 뒤 그 질문 자체도 사라지는 화장터의 막대기가 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는 자기탐구, 스승, 명상과 요가, 체험과 이론을 오가며 ‘아는 자’와 ‘알려진 대상’의 분리를 어디까지 거둘 수 있는지 묻는다.
책소개
1998년 11월 첫 출간된 이후 그동안 오탈자 교정, 표지와 본문 형식 교체 등 세 번의 개정을 거쳤다가 이번에는 완전히 새로운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대대적인 광고나 서평의 후광 없이도 초판 발행 이후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관심 있는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정신세계 분야의 고전이요, 스테디셀러다.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든 밖에서든,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이라면 누구나 이르게 될 수밖에 없고 거쳐 갈 수밖에 없는 큰 지혜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개역판은 이런 ‘인류의 양서’를 분야의 전문 번역가인 구승준 씨가 긴 시간 공을 들여 새롭게 번역한 것이다. 역자는 명상 및 정신세계 분야의 유명 저자인 디팩 초프라와 페마 초드론의 책을 여러 권 번역했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분야에 심취해 꾸준한 독서와 공부를 해왔다. 역자 스스로도 “지금껏 번역된 판본 중 원전에 가장 충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만큼 번역에 자부심이 크다. 그만큼 원전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 옮기고자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으며, 수많은 관련 문헌을 뒤지고 심지어 인도 현지의 지인들에게까지 도움을 청해가며 옮긴이주 또한 충실히 달아 두었다.
목차
- 추천의 말 | 있는 그대로 성자, 라마나 마하리시
- 머리말
제1부 『나』
- 제1장 『나』의 본성
- 제2장 깨달음과 무지
- 제3장 깨달은 사람
제2부 자기탐구
- 제4장 자기탐구 - 이론
- 제5장 자기탐구 - 수행
- 제6장 자기탐구 - 그릇된 견해
- 제7장 순명順命
제3부 스승
- 제8장 스승
- 제9장 침묵 그리고 존재와 하나 됨
제4부 명상과 요가
- 제10장 명상과 집중
- 제11장 진언眞言과 염송念誦
- 제12장 세속에서의 삶
- 제13장 요가
제5부 체험
- 제14장 삼매三昧
- 제15장 환영幻影과 초능력
- 제16장 문제와 체험
제6부 이론
- 제17장 창조론과 현상계의 실체
- 제18장 환생
- 제19장 신의 본성
- 제20장 고통과 도덕성
- 제21장 업業 - 운명과 자유의지
책 속으로
그를 찾아온 방문객들은 다양했다. 스리 라마나의 존재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평화의 힘에 매혹된 이도 있었고, 수행자들을 지도하고 종교적인 가르침을 해석하는 그의 권위에 이끌린 사람도 있었다. 또 자신이 겪는 문제를 상담하고자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떤 이유로 찾아왔든 스리 라마나를 대면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소탈함과 겸손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누구나 드나드는 공용 공간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하루 24시간 내내 방문자들이 접견할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의 사유물이라고는 몸의 주요 부위를 겨우 가릴 수 있는 천 조각과 물주전자 그리고 지팡이가 전부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살아 있는 신’으로 숭배했지만, 그는 자신을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아시람의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다. 17쪽, 머리말
『나』를 깨닫게 되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안다는 행위는 없다. 안다는 것은 그냥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나』를 깨달은 상태는 무언가를 새롭게 얻거나 저 멀리 보이는 어떤 목표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있었던 그대로, 또한 항상 있는 그대로 그냥 존재하는 상태다.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여기는 태도를 버리기만 하면 된다. 우리 모두는 실체가 아닌 것을 실체로 착각하고 있다. 우리가 늘 하던 이런 행위를 그치기만 하면, 참나가 곧 나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저 ‘나로 존재하라’는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당신은 그토록 자명한 『나』를 찾으려고 애썼던 스스로가 우스꽝스럽게 여겨질 것이다. 그 단계에 이르면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의 분리에서 벗어난다. 그때는 보는 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보는 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나』만 남는다. 30쪽, 『나』의 본성
그는 ‘『나』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실체’라는 입장을 견지했으므로, ‘나라는 생각’은 실재하지 않는 망상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나라는 생각’은 대상과 ‘나’를 동일시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 ‘나라는 생각’이 따라서 일어나 ‘나는 생각하다’,‘나는 믿는다’,‘나는 원한다’,‘나는 행한다’라는 식으로 주인 행세를 한다. 그러나 ‘나라는 생각’은 나와 동일시할 대상이 있어야 존재하며, 동일시할 대상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나라는 생각’은 없다. 그런데도 ‘나라는 생각’이 지속적으로 일어나 마치 실체처럼 보이는 것은, 대상과 나를 동일시하는 행위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와 대상을 동일시하는 근원을 추적해보면, ‘나’라는 존재가 육체에 국한되어 있다는 착각이 그 뿌리를 이룬다. 즉 내가 육체를 소유?점유하고 있거나, 같은 공간에 한정되어 육체의 틀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나는 육체다’라는 생각 때문에 이후의 모든 그릇된 동일시가 이루어지기에, 이 생각을 소멸시키는 것이 자기탐구의 주목표이다. 89~90쪽, 자기탐구-이론
그는 ‘나’에 대해 생각하거나, ‘나(나는 원한다, 나는 움직인다 등)‘를 반복하면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되지만, 이런 수행은 예비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곤 했다. 왜냐하면 마음속으로 ‘나’를 반복적으로 되뇌는 방법은 지각하는 주체와 지각하는 대상이 이원적二元的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원성이 존재하는 한 ‘나’라는 생각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라는 생각’은 육체적?정신적으로 ‘인지하는 대상’이 소멸되어야 마침내 사라진다. ‘나’를 알아차리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 『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를 대상으로 아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자기탐구의 궁극적 차원이며, 이것은 다음 장에서 좀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91쪽, 자기탐구-이론
초심자는 자기탐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마음은 오로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탐구함으로써만 다스릴 수 있다. 불을 지피고 이리저리 뒤집다가 마지막에는 자신도 불길에 던져지는 화장터의 막대기처럼,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은 다른 모든 생각들을 소멸시킨 뒤에, 마지막에는 그 자체도 소멸된다.
만약 딴 생각이 일어나거든, 그 생각의 뿌리를 파고들어서 캐내려고 하지 말고 ‘이 생각이 누구에게 일어나는가?’ 하고 자문해보라. 아무리 많은 생각이 일어난다고 해도 괘념치 마라. 어떤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이 생각이 누구에게 일어나는가?‘라고 묻는다면, ‘나에게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다음 다시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마음은 그 근원(참나)으로 돌아가고, 일어났던 생각들도 사라질 것이다. 또한 이런 수행을 거듭하면 마음이 그 근원에 머무는 힘이 커질 것이다. 108쪽, 자기탐구-수행
스리 라마나가 권하는 자기탐구는 흔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아드바이타 베단타 학파의 전통을 따르는 이들은 그 답이 “나는 브라만이다”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해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생각을 할 여지도 없이 “나는 브라만이다”를 마음속으로 되풀이해서 되뇌는 것을 해법으로 삼는다.
하지만 스리 라마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거나 답을 반복해서 외는데 마음을 온통 빼앗기는 한, 마음을 그 근원으로 가라앉혀 소멸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그와 같은 수행법을 비판했다. 두 가지 수행법 모두 자기탐구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스리 라마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의도는 마음을 분석하여 그 본성에 대한 어떤 결론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이를 진언으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이 질문은 생각이나 인식의 대상으로부터, 생각하고 인식하는 자에게로 ‘주위’를 되돌리기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스리 라마나의 견해에 따르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마음으로 찾을 수도 없고, 마음에서 찾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진정한 해답은 ‘마음이 사라진 상태’를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30쪽, 자기탐구-그릇된 견해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면서 자기탐구를 시작해, ‘내’가 아닌 육체를 부정하고, ‘내’가 아닌 호흡을 부정하는 식으로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지성知性으로는 거기까지밖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수행법은 지적이다. 모든 경전에 적혀 있는 수행법들 역시 사실상 수행자들이 진리를 알 수 있게 인도하는 역할밖에는 하지 못한다. 진리란 직접적으로 콕 집어서 가리킬 수는 없다. 그래서 당신처럼 지적으로 수행하는 방법도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나 아닌 것’을 없애는 자가 ‘나’까지 없앨 수는 없다는 점을 잘 관찰하라. “나는 이것이 아니다”라거나 “나는 저것이다”라고 할 때는 반드시 ‘나’가 있어야 한다. 이 ‘나’가 바로 에고 혹은 ‘나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나라는 생각’이 일어난 뒤에, 다른 모든 생각도 뒤따라 일어난다. 따라서 ‘나라는 생각’이 뿌리 생각’이다. 뿌리를 뽑으면 거기에 딸린 온갖 생각들이 함께 우르르 뽑힌다. 그러므로 뿌리인 ‘나’를 찾아서,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그 근원을 찾으면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순수한 『나』만이 오롯이 남을 것이다. 133~134쪽, 자기탐구-그릇된 견해 ---본문
스리 라마나 마하리시Sri Ramana Maharishi에 대하여
1879년 12월, 남인도 타밀지방의 티루출리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에 가사假死 상태로 죽음을 체험한 그는, 참자아는 육체나 마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우쳤다. 이후 내면의 부름을 따라 식음을 전폐하고 깨달음의 상태에 몰입했다. 그가 내뿜는 깨달음의 빛에 이끌려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직 이십 대에 지나지 않았던 이 젊은 스승은 침묵이라는 특이한 형태를 통해 제자들에게 진리를 전수했다. 침묵이야말로 자신의 가르침을 농축된 형태로 직접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는 그의 생각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명성이 높아지고 수많은 방문객들이 그의 아시람에 찾아들면서 침묵의 파장에 동화되지 못하는 이들이 생기자 그들을 위해 입을 열어 가르침을 펴기 시작했다. 이것이 몇 권의 책으로 엮여 서방 세계에까지 널리 전해지면서 위대한 영혼의 스승으로 알려졌다. 허리에 두르는 천조각과 물주전자, 나무지팡이 하나로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을 했던 그는 1950년, 열반에 들었다.
1. 유일하고도 강력한 수행법 - ‘자아탐구법’
2. 평범한 의문에 진지하게 답하는 현자의 지혜
3. 진리를 인격으로 체험하는 드문 감동
람 다스 — 지금 여기로 돌아온 서양인
람 다스(Ram Dass, 1931–2019)의 본명은 리처드 앨퍼트다. 유대계 미국인으로 하버드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고 티모시 리어리와 사이키델릭 연구를 하다가, 1967년 인도에서 님 카롤리 바바를 만나 ‘람 다스’라는 이름을 받았다. 이 이동은 인도인이 자기 전통을 설명한 경우가 아니라, 서양의 심리학자가 인도의 제자가 된 뒤 그 경험을 서구의 언어로 다시 건넨 사례다.
『Be Here Now』의 핵심 문장은 거창한 체계보다 제목 그대로의 방향 전환이다. 과거의 경력과 미래의 성취를 붙잡는 마음에서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것. 라마나가 묻는 자의 근원을 향한다면, 람 다스는 일상의 현재성 속에서 그 물음을 살아내는 통로에 가깝다.
요가난다 — 수행 계보로 쓴 영혼의 자서전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Autobiography of a Yogi 는 한국어에서 『요가난다, 영혼의 자서전』으로 번역되었다. 이 책은 사건의 이력보다 스승과 만남, 요가와 명상, 죽음과 자유, 동서양 영성의 연결을 따라간다. 자서전이면서 동시에 수행 계보서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이 신·육체·조국·니체·붓다와 싸우며 자기 형상을 만드는 전장 보고서라면, 요가난다의 책은 스승과 수행을 통과해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순례기다. 같은 한국어 제목이 한쪽에서는 불과 등반이 되고, 다른 쪽에서는 호흡과 귀의가 된다.
세 사람의 거리
- 라마나 마하리시 — 답을 더하지 않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그 근원으로 돌린다.
- 람 다스 — 서양 심리학과 인도 수행 사이를 건너 ‘지금 여기’를 삶의 언어로 번역한다.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 스승과 요가의 계보를 영혼의 자서전으로 기록한다.
셋을 함께 모시되, 이 셋이 하나의 정답이라고 만들지는 않는다. 스승의 이름보다 각자의 삶에서 무엇이 실제로 열렸는지를 읽는다.
참고 문헌
- (라마나 마하리쉬 n.d.) — 라마나 마하리쉬, 『있는 그대로』.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2014)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요가난다 영혼의 자서전』.
BIBLIOGRAPHY
라마나 마하리쉬. n.d. 있는 그대로. Accessed August 6, 2025.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53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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