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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2024.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Translated by 배명자. https://m.yes24.com/Goods/Detail/136466376.

History

나 자신이 된 일에 돈 받는게 말이 되나

quote

어떻게 소명이 급료 대장에 오를 수 있는가? 계시에 어떻게 값을 메길 수 있는가? (Dictaque mirantum magni primordiamundi: 대우주의 근원에 대한 가르침으로 사람들의 감탄을 일으켰다)

교사로서 평생을 사는 동안 이 질문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왜 나의 산소,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해 보상을, 돈을 받는가?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는 것, 『파이드로스』나 『템페스트』를 공부하는 것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소개하는 것, 이런 일은 나의 특권이자 보상이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복과 희망이다. 지금 내가 가르치는 일에서 은퇴하고 느끼는 것은 깊은 고립감이다. 내가 제네바에서 이끈 박사 과정 세미나는 25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이어졌다. 그 목요일 오전은 평범한 세속적 영혼이 성령 강림을 받는 것과 비슷했다. 어떤 실수 또는 타락으로 내가 나 자신이 된 일에 보수를 받게 되었는가? 실제로는 내가 나에게 배우는 이들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 조지 스타이너, 『가르침과 배움』 1장 영속하는 근원

서브스택

정말 놀라운 글이다. 그래서 말야. 생활을 위해서 일은 해야된다. 프란츠 카프카의 보험일, 사르트르의 극작가일,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 등 이책에서도 많은 사례가 나온다.

힣은 물류창고에 나간다. 육체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책을 들을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겨서 놀라운 독서체험을 하고 있다. 일 자체는 아름답다. 다만 손가락으로 소명을 풀어내야 하는데 손가락이 아프다. 그리고 시간. 시간. 시간. 힣은 정말 시간 욕심쟁이다.

TODO 작성 하다가 중단

아. 오늘 어깨 힘이 많이 들어가네. 계속 쓰고 지우고 있다. 위의 글이 힣에게 가볍지 않기 때문인가? 힣의 이야기로 쓰자. 계속 ‘나’로 빠지게 된다.

힣은 삶은 그의 것이 아니다. 그는 손가락을 내어 주었다. 어쏠로그에 쓰는 글도 그 하나 뿐이 아닌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을 보라. 자기목적성, 운명애라는 단어가 몰입(Flow)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몰입의 삶을 사는 사람은 당연히도 굉장히 비슷하다. 아. 좋은 예가 떠올랐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1940년 로뎅을 만났다. 아!! 이야기를 옮기려는데 오늘 왜케 글이 안써지지? 아놔! 한 마디로 츠바이크 뒤에 두고 로뎅이 잠깐 작품 수정한다고 해놓고 한 시간 반 가까이 신경도 안쓰고 세워 놓았다는 것이다! 이런 무례가 다 있나!라고 할 수 있지만 츠바이크는 숨도 제대로 못쉬고 그 장인의 위대함에 빠져 버렸다. 조금 생동감을 추가해 보자.

로뎅은 만족할 정도가 되어 작업을 마친 후 츠바이크를 보고 깜작 놀랐다. 여기서 로뎅이 한 말이 예술이다.

“미안해요.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하지만 이해하실 거라 믿어요…”

츠바이크는 당시 20대 젊은이였다. 어리다고 무시하는 건가요? 아니다. 이미 츠바이크는 문학계의 떠오른 샛별이였다.

힣은 이렇게 바라 본다. 자네가 하는 글이나 내가 하는 조각이나 예술이 나오는 곳은 같아. 그러나 다를 게 없다. 모를리 없다는 거다. 이에 대한 츠바이크의 글을 그대로 옮겨본다.

quote

그는 계속 해명하려 했지만, 나는 너무 기뻐서 그의 손을 덥석 잡고 감사를 전했다. 그가 나를 잊고 작업에 몰두한 것이 내게는 인생 최대의 교훈이 되었음을 그도 알았던 것 같다. 내게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고, 작업실에서 나를 데리고 나가면서 육중한 팔로 내게 어깨동무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실에서 머물럿던 그 한 시간에 나는 학교에서 여러해 동안 배웠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 이후로 나는 인간의 모든 일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선하고 유효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자기 자신과 모든 목표 및 목적을 완전히 잊고, 오직 도달할 수 없는 궁극적 목표인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 슈테판 츠바이크,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 영원한 교훈(1940)

아. 읽어 보니 뭐 여기 오늘 할말 다 들어 있네. 사실 힣은 책을 귀로 듣는다. 종이로 책을 읽는 능력을 잃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앉아서 하는 일은 노트북 두드리는 것 뿐이다. 귀로 책을 듣는 것은 눈을 쉬게 한다는 의미를 뛰어 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장면을 경험한 것 처럼 확 올라올 때가 있다. 어떠한 장면에서는 건조한 TTS 음성 뿐인데도 절절한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츠바이크 글 옮기다가 확 왔다. 츠바이크가 느꼈던 그 것일게다.

좋다. 조지 스타이너로 돌아오자. 힣은 저자가 누군지도 몰랐다. 책 제목에 끌려서 좀 들어 보았던 것 뿐이다. 저 지점에서 확 왔다. 자세 잡고 이 장인의 글을 리플레이 해 본다. 들었던 것 계속 다시 듣는다.

뭔가 삶에 꼬였던 것이 풀린다. 힣은 손가락을 내어 놓았는데 그걸로 돈 벌 생각을 해왔던 것이다. 당연히 그런 재주가 없으니 고통스러웠다.

아 너무 오래 글을 쓰고 있다. 이 주제는 참 힣에게 너무 아프고 무겁다.

결론을 말한다. 프란츠 카프카가 문학을 위해서 보험일을 했던 것 처럼은 아닐지라도 인생도구를 위해서 삶을 나눌 것이다.

  • (슈테판 츠바이크 2024)

@슈테판츠바이크 전기작가::영원한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