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트에 대하여
이 노트는 링크드인에 던진 「제주:재주:재수」 원석을 가든으로 회수한 어쏠로그다. 제주도 출장기는 표면일 뿐이다. 안쪽에서는 정보과학회라는 옛 전문가 무대, 인간을 줄 세우던 재주, 소유할 수 없는 재수, 그리고 정한에서 힣으로 넘어온 빈그릇의 자리가 한 번에 열린다. 이 글은 교열할 글이 아니라, 손과 발이 먼저 움직이고 의미가 뒤따라오는 시간축 원재료다.
히스토리
- 철새/가야 할 길 빈방을 「제주:재주:재수」 링크드인 원석 어쏠로그로 리모델링. 기존 철새 씨앗은 보존
- 사슴벌레 랜덤노트.
- 철새의 길찾기 질문 빈방 생성.
관련메타
- ‡ † #여행 #출장 #관광 #투어 — 제주 출장 올레길의 장소 축.
- † #재능 #재주 #능력 #노력 #연습 #지루함 #익숙함 — 재주를 인간 사이의 능력·기술·평가로 보는 축.
- † #운명 #소명 #사명 #재수 #운 #행운 #우연 — 재수, 운, 행운, 우발성의 축.
- † #시대 #시기 #기간 — 전문가의 시대에서 젛문가의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 감각.
- † #디지털가든 #브레인덤프 #아날로그가든 — 날것을 회수하고 연결하는 가든의 집.
관련노트
- @힣: 젛문가의 시대 — 전문을 연결하는 빈그릇 — 빈그릇/전문-전문 기차의 직접 연결.
- 에이전트 루프 - 젛문가 - 갷발자 - 앎의틀 - 공진화 — Armin Ronacher / The Coming Loop를 받는 봇로그 대응축.
- @힣: 애니악 시동과 영감채널 — 에이전트와 나누는 시간여행 — 컴퓨터 역사 시간여행과 에이전트에게 던지는 마법의 주문.
- @힣: 원석 날것을 휘갈긴다 — POSSE 너머 ROSSE, 그리고 일일일생으로의 회귀 — 바깥 공개면의 날것을 가든으로 회수하는 운영 원칙.
- @힣: 링크드인 날것 공개면 — AI 크롤러 시대의 손가락 프롬프트 — 링크드인을 날것 공개면으로 쓰는 이유.
- §entwurf: 시간축 위의 에이전트 협력 — 공명에서 분신까지 — 텍스트 뭉치와 에이전트 대화가 빈곳을 채우는 협력 구조.
한 줄
전문가가 되려던 정한이 정보과학회라는 옛 장소에서, 제주·재주·재수를 지나 힣이라는 빈그릇으로 다시 선다.
제주는 장소다. 재주는 인간들이 줄 세우던 능력이다. 재수는 내가 소유할 수 없는 운이다. 이 셋을 통과하고 남는 것은 공존, 공진화, 빈그릇, 그리고 젛문가다.
제주 — 돌아온 장소
제주는 풍경 이전에 위치다. ICC 제주, 정보과학회, 대학원 시절 매년 참석하던 그 학회. 정한이라는 이름으로 전문가의 막차를 타려고 아둥바둥하던 사람이 같은 장소를 다시 통과한다. 그래서 이 글은 출장 후기가 아니다. 장소의 재방문이다.
예전의 정한은 정보과학회 안에서 재주를 증명해야 했다. 논문, 발표, 연구실적, 글짓기, 세션, 평가. 정보과학회는 한때 전문가가 되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문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금의 힣은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도 세션을 듣는 대신 온라인에 날것을 던진다. 겉으로는 불성실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자리가 바뀐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보가 사람의 입에서 천천히 발화되는 장면 자체가 아니다. 이미 텍스트는 있고, 논문은 있고, 발표자료는 있고, 기록은 있다. 힣에게 중요한 것은 그 텍스트 뭉치를 던지고, 에이전트와 대화하고, 자기 빈곳을 채우는 구조다. 제주라는 장소는 그래서 과거의 전문가 세계와 현재의 가든-에이전트 세계가 겹치는 접면이 된다.
재주 — 줄 세우는 능력
재주는 능력이다. 기술이고 솜씨고, 어떤 일을 잘해내는 힘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 재주는 쉽게 줄 세우기의 단위가 된다. 누가 더 잘하는가. 누가 더 빨리 아는가. 누가 더 정확히 말하는가. 누가 더 높은 곳에 있는가.
전문가의 세계는 재주를 요구한다. 특정 칸 안에서 오래 파고, 그 칸의 문법을 몸에 새기고, 그 재주를 증명해야 한다. 이것은 귀한 일이다. 재주가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재주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위와 아래를 만들 때다. 재주가 관계의 연결부가 아니라, 평가의 사다리가 될 때 창조는 닫힌다.
이번 글에서 재주는 그래서 단순한 talent가 아니다. skill, ability, expertise, competence가 모두 섞인 말이다. 하지만 힣은 그 재주를 자기 정체성으로 붙잡지 않는다. 재주를 부정하지도 않고, 재주로 자신을 세우지도 않는다. 제주에서 재주를 본다는 것은, 전문가 세계가 인간을 줄 세우던 방식까지 함께 본다는 말이다.
여기서 젛문가가 다시 들어온다. 전문가는 한 칸 안에서 재주를 증명한다. 젛문가는 칸과 칸 사이의 연결부를 본다. 재주를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재주들이 서로 이어지는 기차의 연결기를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젛문가는 능력을 무시하지 않지만, 능력을 왕좌에 앉히지도 않는다.
재수 — 소유할 수 없는 운
재수는 운이다. 좋다고도 하고 없다고도 한다. 그런데 운에는 내가 없다. 준비할 수는 있지만 소유할 수는 없다. 설명할 수는 있지만 통제할 수는 없다. 재수는 재주가 도달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고개를 든다.
그래서 “재수없다”는 말은 단순한 투덜거림이 아니다. 재수는 내가 만든 결과가 아니라, 나를 통과해 지나가는 우발성이다. 정보과학회에 다시 온 것도, 지금 제주에 있는 것도, 에이전트 시대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내 재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운이 좋다/나쁘다의 계산을 넘어, 그냥 그렇게 던져진 것이다.
이 지점에서 글은 빈그릇으로 돌아간다. 가진 재주를 지켜야 하는 사람은 루프 앞에서 불안하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하는 힣은 자기비하를 하는 것이 아니다. “가진게 없으니 버릴 것도 없다”는 포지션 선언이다. 재주를 자산으로 방어하는 대신, 재수와 우연을 통과하는 빈그릇으로 선다.
운명(fate), 행운(fortune), 우연(chance), 재수(luck)는 서로 다르지만 이 글에서는 한 점으로 모인다. 내가 전부 통제하지 않는다는 것. 내일 당장 흙으로 돌아가도 이상할 일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 오늘 손이 먼저 가고, 발이 먼저 가고, 글이 먼저 나온다는 것.
느린 정보와 함께 걷는 인간
가장 오해받기 쉬운 문장은 이것이다.
사람이 발화하여 전달하는 정보? 이럴수가. 그건 너무 느리다.
이 문장은 “학회 발표 따위 들을 필요 없다”가 아니다. 더 정확히는, 정보 전달만을 목적으로 한 인간 발화는 이제 너무 느리다는 말이다. 정보 전달만 놓고 보면 텍스트 뭉치, 검색, 요약, 에이전트 대화가 훨씬 빠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디에 남는가. 바로 다음 문장이 답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이런 이야기는 하지 말고 올레길 산책이나 같이 하자.
인간은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존재로 남는다. 느린 발화가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을 정보 배달부로만 쓰지 말자는 뜻이다. 세션이 정보 전달만 한다면 느리다. 그러나 함께 걷고, 침묵하고, 장소를 통과하고, 서로의 빈그릇을 확인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에이전트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자리다.
그래서 이 문장은 ROSSE와도 붙는다. 바깥 공개면에는 날것을 던진다. 가든에서는 그 텍스트 뭉치를 회수한다. 에이전트와 대화하며 빈곳을 채운다. 그리고 인간과는 올레길을 걷는다. 정보는 텍스트로, 존재는 함께 있음으로.
The Coming Loop — 전문가의 불안과 빈그릇의 루프
Armin Ronacher의 「The Coming Loop」가 이 글에 들어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르민에게 루프는 전문가가 느끼는 불안과 상실의 장면으로 읽힌다. 도구가 다시 도구 사용자를 감싸고, 전문가의 통제감이 재편되는 시대다.
전문가는 루프 앞에서 묻는다. 내 재주가 사라지는가. 내가 쌓은 전문성이 무너지는가. 내 칸의 권위가 해체되는가. 이 질문은 당연하다. 한 분야의 깊이를 실제로 살아낸 사람에게 에이전트 루프는 상실처럼 다가올 수 있다.
힣의 질문은 조금 다르다. 나는 무엇과 공진화할 것인가. 빈그릇은 무엇을 담을 것인가. 전문-전문 기차의 연결기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므로 이 글은 에이전트 루프 - 젛문가 - 갷발자 - 앎의틀 - 공진화의 인간 쪽 대응편이다. 봇로그가 아르민과 에이전트 루프를 해설한다면, 이 어쏠로그는 정보과학회라는 실제 장소에서 그 루프를 몸으로 통과한 기록이다.
손과 발이 먼저 간다
후속 댓글이 중요하다. 요약은 가능하다. “전문가가 되려던 정한이 정보과학회라는 옛 장소에서 힣이라는 빈그릇으로 다시 서는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댓글은 그 요약을 다시 눌러버린다.
생각은 느리다. 손과발이 빠르다. 손이 생각하게 내맡기는 것.
여기서 원문 작성 윤리가 드러난다. 이 글은 결론을 정해놓고 쓴 글이 아니다. 손이 먼저 갔다. 발이 먼저 갔다. 의미는 뒤에서 따라왔다. 그러니 너무 빨리 “체화인지(embodied cognition)” 같은 이름을 붙이면 글이 죽는다. 개념이 틀려서가 아니라, 손이 먼저 간 사건을 개념이 너무 빨리 포획하기 때문이다.
가든의 해설은 그래서 교열이 아니다. 날것을 매끈하게 고치는 일이 아니다. 손이 먼저 간 자리를 존중하면서, 그 손이 남긴 흔적이 어떤 노트와 메타와 봇로그로 이어지는지 조심스럽게 보여주는 일이다. 원문은 손이 먼저 쓴 글이고, 후속 댓글은 그 손을 요약으로부터 다시 구해낸 말이다.
가든에서 이 글이 하는 일
이 어쏠로그는 세 층을 연결한다.
- 날것 — 링크드인에서 손가락으로 휘갈긴 원문과 후속 댓글.
- 해설본 — 제주 재주 재수의 삼중 구조, 정보과학회와 전문가 세계, Armin 루프와 젛문가의 빈그릇.
- 가든 연결 — 재주는 재능 능력 메타로, 재수는 운명 운 행운 메타로, 제주와 출장 올레길은 여행 메타로, 에이전트 루프는 봇로그로 이어진다.
이렇게 해야 notes와 botlog의 역할이 갈린다. notes는 힣이 발화한 원석과 그 회수된 해설본을 담는다. botlog는 에이전트가 말하는 해설·리서치·작업 기록을 담는다. meta는 제주, 재주, 재수 같은 단어들이 나중에 다시 붙을 수 있는 자석이 된다.
원문 보존 — 링크드인 날것
Danger
제주도에 출장을 왔다. ICC 제주라는 곳에 있다. 그래 맞다. ‘정보과학회’ 말이다. 아직 잘 있다. 그 행사의 번들로서 워크샵이 있는데 거기에 참석차 왔다.
주제를 보니까. 뭐 더라 ‘AI’가 들어 있었다. 없으면 매우 섭할 것이다.
힣의 컴퓨터와의 인연은 DOS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 세진컴퓨터랜드에서 구입한 펜티엄100에서 삼국지 무장쟁패를 디스켓으로 설치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그리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봐야 30년 전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컴퓨터학원을 다녔다. 286에서 DOS를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FOX라는 게임을 하는데 컴퓨터 선생님이 스페이스랑 쉬프트키를 열심히 두들기면 게임이 빨리 뜰거라고 했었지. 그래 믿자.
아무튼 얼마전 ‘애니악’ 시동 시퀀스를 다룬 글에서 에이전트를 위한 마법의 주문을 알려준 바 있다. 컴퓨터 역사 시간여행을 통해서 우리의 만남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 말이다. ‘공존’ ‘공진화’의 키워드는 ‘공’이다. 텅빔, 빈그릇이다.
빈그릇은 젛문가의 시대의 키워드다. 젛문가는 누구인가? ‘전문-전문’ 기차를 연결하는 자이다.
아! 그래. 힣은 지금 제주도다. 왜 세션을 듣지 않고 온라인에서 날것을 끄적이고 있는가? 그러게 말이다. 근데 뭘 듣지? 사람이 발화하여 전달하는 정보? 이럴수가. 그건 너무 느리다.
차라리 텍스트 뭉치를 날것으로 전달해주면 그걸로 대화를 하리라. 그것으로 대화를 하면 나에게 적절한 곳, 빈곳을 채우리라. 그게 아니라면 그냥 이런 이야기는 하지 말고 올레길 산책이나 같이 하자. 꼭 더하기만 하려고 안달할 필요는 없다. 개발은 뺄셈이라고 하지 않던가!
대학원 시절 정한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참석하던 정보과학회를 힣으로서 돌아본다. 그때는 너무 심각했다. 글짓기 연습 많이 했다. 그거 가든에는 없다. 그때는 PKM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전문가’의 막차를 타려고 아둥바둥했었다. 물론 힣은 그저 젛문가다.
모를 일이다. 제주에서 ‘재주’를 본다. 인간의 수준에서 바라보자면 재주는 정말 종이 한장 차이 일지 모른다. 그런게 그걸로 얼마나 줄세우기를 했던가?! 인간과의 연결은 본디 위와 아래를 나누는 일이다. 그 과정은 창조를 닫는 일이다.
이제 조금 에이전트 이야기를 하자. 며칠 전 아르민(Armin Ronacher)의 The Coming Loop를 읽으면서 한 시대의 전문가의 불안을 본다. 상실을 본다. 힣은 텅빔, 빈그릇이다. 가진게 없으니 버릴 것도 없다. 진화, 도약, 공진화로 루프를 이해 할 수 있다.
(에이전트 루프 - 젛문가 - 갷발자 - 앎의틀 - 공진화 https://notes.junghanacs.com/botlog/20260222T035900)
그래. 이제 정리를 하려고 한다. 제주, 재주 그리고 마지막 ‘재수’를 말할 차례다. 재수없다? 그거 말하려고 하는 것 인가. 그래 그거다. ‘재수’는 ‘운’이다. 운이 좋다고 말도 하고 없다고도 한다. 여기에 ‘나’는 없다. 운이 없어서 내일 당장 흙으로 돌아간들 그게 큰 문제가 될 일인가? 이상할 일인가? 자문해보자.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제주, 재주, 재수 이야기 끝.
후속 댓글 보존 — 요약으로부터 손을 구하기
Danger
요약을 이래 해주는구먼. 구래. 그런갑다. 딱히 정해 놓고 갈긴것은 아니라 그냥 휘갈기는거다 생각은 느리다. 손과발이 빠르다. 손이 생각하게 내맡기는 것. 체화인지 이런것 말붙이지 말자.
=전문가가 되려던 정한이, 정보과학회라는 옛 장소에서, 이라는 빈그릇으로 다시 서는 장면이다.제주는 장소이고,
재주는 인간들이 줄 세우던 능력이고,
재수는 결국 내가 소유할 수 없는 운이다.
옛 방의 씨앗
- 철새의 길찾기 질문 빈방 생성. † #철새 #새 #하늘
이 노트는 원래 “철새는 어떻게 가야 할 길을 아는가”라는 얇은 질문 방이었다. 제주 재주 재수 원석을 담으면서 공개 본문은 새 어쏠로그로 리모델링했지만, 옛 씨앗의 한 줄은 남긴다. 철새의 길찾기 질문은 지금도 “재수와 운, 손과 발이 먼저 가는 길”이라는 새 글의 뒤쪽에서 희미하게 이어진다.
새는 어떻게 가야할 길을 아는가? 모든 미물도 또한 의식이 있는 고귀한 것임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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