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트에 대하여
아낙시만드로스는 스승 탈레스의 답을 넘어서 세계의 근원을 아페이론으로 사유하며, 질문의 틀 자체를 바꾸는 철학의 몸짓을 보여준다. 이 노트는 쿤의 패러다임과 유리알유희를 함께 끌어와, 틀 안에서만 묻는 인간이 어떻게 틀 바깥을 상상하는지 탐색한다.
히스토리
- 생성 — 점심 후 사무실에서, 로벨리 아낙시만드로스 청취 중, 앎의 틀과 유리알유희에 대한 사유
관련메타
관련노트
- @카를로로벨리 물리 철학 존재 — 로벨리 노트
- @토머스쿤 과학혁명의구조 패러다임 — 패러다임 원전
- 힣 유리알유희 오늘날 바라본다면 — 유리알유희
- 힣 갈매기의꿈 무지의앎 — 무지의 앎
- 교육 쿤 패러다임 구성주의 — 패러다임과 교육
앎의 틀 — 틀 안에서만 물을 수 있다
출발점: 쿤의 패러다임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은 모든 것을 알 수 있는가? 아니다. 틀 안에 있는 것들만 물어볼 수 있다.
@토머스쿤 과학혁명의구조 패러다임: 패러다임은 앎의 경계다. 경계 안에서 질문하는 것, 경계 밖을 보는 것은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
암기식 학습으로는 이 경계를 넘기 어렵다. 인공지능과의 지적 유희를 통해, 자기 성찰과 무지의 앎을 통해, 조금씩 틀을 확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낙시만드로스가 한 것
@카를로로벨리 물리 철학 존재: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스처: 스승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 하자, “그렇지 않다 — 물도 규정할 수 없는 그 무언가(아페이론)다”라고 말했다.
스승도 의심할 수 있는 것. 이것이 틀을 넘으려는 태도의 원형이다.
유리알유희 — 목적 없는 지적 유희
힣 유리알유희 오늘날 바라본다면: 헤세의 유리알유희처럼, 더 안다고 뭐가 달라지는가? 없다. 조건이 없다.
인류 지성사에 대한 깊은 존경 위에 서 있다. 생이 너무 짧아서 엄두가 안 되는 이 배움의 즐거움. 목적 없이 이 여정에 동행하는 것.
2026-04-07 점심 후 사무실 — 현존의 기록
작은 선풍기는 웅웅 거리고. 이어폰에서는 TTS가 책을 읽어준다. 식사만 하면 속은 더부룩하다.
숨을 쉬고 배는 불편하고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나는 여기에 있으며 나는 기록하고 있다.
목적은 없다. 목적은 있다. 지금 타이핑 하고 있는 게 내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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