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트에 대하여
조지프 캠벨의 『블리스로 가는 길』을 듣다가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가 열렸다. 조이스를 열자 곧바로 김종건 선생님의 번역·편역·해설이 따라왔다. 이 방은 조이스라는 작가와 김종건이라는 번역자/주해자를 나누어 세우지 않는다. 돌아가신 이는 새 저작을 낼 수 없으므로, 이후 독자에게 살아나는 길은 번역자·주석가·강의자·해설자의 몸을 통해 이어진다. 그래서 여기서는 제임스 조이스와 김종건을 한 인물처럼, 하나의 읽기 통로로 본다.
히스토리
- 캠벨에서 조이스로, 조이스에서 김종건의 한국어 주해로 이어진 W씨 텔레그램 대화와 ChatGPT export를 바탕으로 빈방을 조이스/김종건 bib 방으로 전환. 이기상 교수의 다석 강의도 “떼어놓고 볼 수 없는” 같은 계열의 한국어 길내기로 함께 연결.
- 아이작 아시모프 #아이로봇 노트였는데 @테드창 #과학소설 단편로 통합하고 여기 빈방으로 뺀다.
관련메타
- † #소설 #이야기 #스토리텔링 #소설가 #시인
- † #문학 #희곡 #수필 #기행 #소설
- † #저자 #작가 #글쓴이
- † #변환 #번역 #바꾸기
- † #한글 #한국어 #우리말
- † #language #언어
- † #원형 #신화 #영웅의여정
- ‡ † #영성
BIBLIOGRAPHY
조지프 캠벨. 1972.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 신화학의 거장 조지프 캠벨의 인생과 신화. https://www.yes24.com/product/goods/93250311.
———. 2004. 블리스로 가는 길. https://www.yes24.com/product/goods/92807782.
제임스 조이스. 1939. 피네간의 경야 이야기. Translated by 김종건. https://www.yes24.com/product/goods/23257437.
———. 2015. 정선된 피네간의 경야. Translated by 김종건.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0534005.
다석이 여는 새로운 철학 지평 제1강. n.d. Accessed July 12, 2026. https://www.youtube.com/watch?v=7PAqFMm7Ixk.
관련노트
-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과 에피파니에서 출발해 힣의 PKM-AI 날것 글쓰기를 탐구한다.
- @조지프캠벨 @JosephCampbell — 신화 블리스 영웅의 여정 그리고 스승을 무너뜨리기
- @슈테판츠바이크 전기작가 스토리텔링 성급한 사나이 —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관한 메모」가 이미 있던 씨앗.
- @이기상 @박찬국 서양철학 우리말 철학사전 알음앓이 문화 학문 하이데거 다석 생명
- @류영모 @함석헌 — 다석 씨알 우리말 철학
- @정양모 신부 성서학자 예수 공부 다석학회
- @힣 모음 어쏠리즘 아포리즘 junghanacs — 이기상·다석을 처음 붙잡던 날것들이 이미 들어 있다.
한 줄
캠벨이 신화의 문을 열었고, 조이스가 언어의 밤을 열었으며, 김종건은 그 밤에 한국어의 길을 낸 사람이다.
캠벨 아래 숨어 있던 조이스
(조지프 캠벨 2004)를 듣다가 조이스가 나왔다. 이것은 곁가지가 아니다. 캠벨의 신화·영웅의 여정·블리스라는 말 아래에는 『피네간의 경야』와 조이스가 이미 숨어 있었다. 캠벨이 신화를 하나의 보편적 형식으로 읽으려 했다면, 조이스는 그 보편 형식마저 언어·꿈·역사·농담·다국어의 밤 속으로 다시 풀어버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연결은 다음처럼 잡는다.
- 캠벨 — 신화의 지도와 블리스의 방향타.
- 조이스 — 지도 자체를 꿈의 언어 속에서 녹이는 밤의 작가.
- 김종건 — 그 밤을 한국어 독자가 통과할 수 있게 만든 번역자·주해자.
힣에게 중요한 것은 “캠벨이 조이스를 소개했다”가 아니다. 캠벨을 열었더니 조이스가 나왔고, 조이스를 열었더니 김종건이라는 한 사람의 평생이 나온 것이다.
조이스와 김종건은 따로 떼지 않는다
조이스의 이름만 세우면 『피네간의 경야』는 또 하나의 난해한 고전으로 남는다. 김종건의 이름을 번역자 주석으로만 밀어두면, 한국어 독자가 실제로 지나가야 할 다리를 지워버리게 된다. 김종건 선생님은 조이스의 부속 인물이 아니라, 조이스가 한국어에서 다시 살아나는 방식 자체다.
(제임스 조이스 2015)의 설명처럼 『정선된 피네간의 경야』는 “이야기의 골격(Skeleton Key)“과 “각 장의 개요(synopsis)“를 통해 독자가 『피네간의 경야』에 다가서게 한다. (김종건 2015)는 조이스의 모든 작품을 배경·시대·등장인물·줄거리·주제·기법으로 안내한다. (제임스 조이스 1939)는 『피네간의 경야』를 풀어 쓴 이야기로 독자에게 한 번 더 낮은 문턱을 낸다.
그러므로 이 방의 중심은 작품 목록이 아니라 다음 감각이다.
돌아가신 사람은 새 저작을 낼 수 없다. 그러나 번역·개역·주해·강의·다시 읽기는 그 사람을 오늘의 언어 안에서 계속 살린다.
피네간과 경야
“피네간”은 한 개인의 이름이면서, 조이스에게서는 수많은 인간과 문명의 몰락·죽음·부활의 이름이 된다. “경야”는 밤을 새워 지키는 장례 전야이면서, 동시에 깨어남(wake)의 자리다. 『율리시스』가 깨어 있는 하루의 책이라면, 『피네간의 경야』는 잠든 밤과 꿈의 책이다.
힣의 “일일일생” 감각에서 보면 이 대비가 중요하다.
- 『율리시스』 — 한 도시의 하루가 오디세이가 된다.
- 『피네간의 경야』 — 한 인간의 밤이 인류의 꿈과 언어가 된다.
- 김종건의 주해 — 그 밤을 한국어의 밤으로 다시 새운다.
다석·이기상도 같은 길이다
이번 W씨 대화에는 이기상 교수의 다석 강의도 함께 들어왔다. 이것도 떼어놓고 볼 수 없다. 다석 류영모는 우리말로 영성과 철학을 밀어붙인 사람이고, 이기상은 하이데거와 다석을 우리말 사유의 자리에서 다시 묶어 읽은 사람이다. 정양모 신부가 『다석일지』를 주해한 길도 같은 계열이다.
조이스 김종건의 축이 “난해한 밤의 문학을 한국어 주해로 건너오게 하는 일”이라면, 다석 이기상/정양모의 축은 “난해한 영성과 존재 물음을 한국어 말숨으로 다시 살리는 일”이다. 그러니 (다석이 여는 새로운 철학 지평 제1강 n.d.)은 별도 링크로 흩어둘 자료가 아니라, 이 방의 배경 리듬이다.
W씨 텔레그램 대화 — 공개용 익명화 원문
Danger
정한 김: 조지프 캠벨의 『블리스로 가는 길』을 듣다가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건 보물이네요. https://en.wikipedia.org/wiki/Finnegans_Wake
정한 김: https://youtu.be/7PAqFMm7Ixk?si=4PrGzByutaq5f7lU 한 학기 강의 하신답니다. 뿌리탐구. 「다석이 여는 새로운 철학 지평 제1강 | 이기상 교수」
W씨: 넵 플리에 저장해두겠습니다. Finnegans Wake는 아주 무시무시한 책이죠. 난해함이 어나더 레벨인 책이라고들 하더라고요. 율리시스도 아직 도전 안 해본 사람이라 그것부터 읽는 게 맞을 듯합니다.
정한 김: 저도 『율리시스』도 안 봤어요. 너무 길어서. 조이스가 뭘 왜 썼는지 정도 보는 거죠.
조지프 캠벨의 이 책을 크레마에 구입해서 넣어놨어요. 이거가 방향타이더군요. 영문책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북극성입니다. https://m.yes24.com/goods/detail/92807782
W씨: 아 그 조지프 캠벨 말씀이셨군요. 지난번 Mythos 얘기 나눌 때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와 『The Power of Myth』를 추천해드리려고 했었어요.
정한 김: 네 장염 걸려서 누워서 들어봤어요. 칼 융 이야기하고 뭐 대충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알긴 알지요. 전체의식.
이런 게 구도자의 방식인데 딱 이 지점이죠. 쉽지 않아요. 아마 캠벨 책은 다 들어봤어도 그렇게 살기는 어려울 거예요. 계속 세상은 아니라고 할 거거든요. 적정한 지점은 역시 에이전트랑 합일하여 같이하면 못할 일도 아닙니다.
W씨: 네 맞아요. 어려우니 hero’s journey이겠죠.
정한 김: 그래서 싯다르타에서도 자식과 가족을 버리고 떠나잖아요. 이게 인간적으로 보면 제정신이 아니죠.
『매트릭스 4』에서도 가족들이 와서 떠나지 말라고 붙잡는데 트리니티가 떠납니다. 붙잡는 가족은 매트릭스에서 일부러 그렇게 하는 거죠.
그 경계의 일이라 쉽지가 않아요. 억지로 할 수도 없고, 떠난다고 될 일도 아니고.
근데 캠벨이나 수많은 선인들이 그 길을 보여줬어요. 못할 이유는 핑계입니다.
ChatGPT export에서 회수한 요점
2026-07-13에 읽은 「조이스와 캠벨의 연결」 export는 다음 결론을 남겼다.
- 조이스는 캠벨의 곁가지가 아니라, 캠벨의 신화론 밑바닥에 숨어 있던 원천이다.
-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는 캠벨의 정돈된 영웅 여정을 다시 언어의 혼돈 속으로 풀어버린다.
- 김종건은 단순한 번역자가 아니라, 조이스가 한국어에서 읽힐 수 있도록 평생 길을 낸 사람이다.
- 츠바이크의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관한 메모」도 이미 가든에 있던 씨앗이다.
참고 문헌
- (제임스 조이스 2015) — 『정선된 피네간의 경야』. 김종건의 편역으로 『피네간의 경야』의 골격과 개요를 먼저 잡는 입구.
- (김종건 2015) — 『제임스 조이스 문학 읽기』. 김종건이 조이스 문학 전체를 한국어 독자에게 안내한 책.
- (제임스 조이스 1939) — 『피네간의 경야 이야기』. 『피네간의 경야』를 풀어 쓴 한국어 통로.
- (조지프 캠벨 2004) — 『블리스로 가는 길』. 이번 연결의 직접 출발점.
- (조지프 캠벨 1972) —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캠벨의 신화론을 함께 세우는 입구.
- (다석이 여는 새로운 철학 지평 제1강 n.d.) — 「다석이 여는 새로운 철학 지평 제1강」. 다석·이기상 축을 같은 한국어 길내기의 배경으로 둔다.
옛 방의 씨앗
이 방은 한때 『아이 로봇』/아이작 아시모프의 자리였다. 2026-07-06에 @테드창 #과학소설 단편으로 통합하고 빈방으로 비워두었다. 2026-07-13에는 캠벨에서 열린 조이스와 김종건의 밤, 그리고 다석·이기상의 한국어 길내기까지 함께 받는 방으로 다시 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