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트에 대하여

이 노트는 완결된 연대기 노트를 고치지 않고, 링크드인 공개면에서 던진 자기서사를 별도의 빈방에 앉힌 것이다. 정한의 삽질 연대기, 창조와행위 — 오르간과 키보드, 이맥스 버전 연대기를 연결하되, 중심 질문은 하나다. 실패와 공백 이후 남은 것이 무엇인가. 답은 손, 악기, 기예, 그리고 계속 실패하며 되어가는 시간축이다.

히스토리

  • [2026-06-11 Thu 13:45] 빈방 채움 — 실패 이후의 기예 연대기, 링크드인 글 2편을 묶어 정리.
  • [2024-12-30 Mon 17:12] 임시 빈방 생성.

한 줄

실패는 이력서에서 지워야 할 공백이 아니라, 손에 악기가 붙기까지의 수련 시간이었다.

대학원 긴긴 생활 동안 제대로 이룬 것이 없었다. 스타트업도 실패했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갔다가 포기했고, 백수와 육아와 물류창고의 시간이 이어졌다. 지나고 보면 황당하다. 아이디어라는 것이 있었던가. 커리어라 부를 만한 선명한 선이 있었던가.

그런데 다 버리고 알몸에서 시작하니 이상하게 바랄 것이 없어졌다. 흉내낼 필요가 없어졌고, 누구의 동의와 인정을 받을 생각도 줄었다. 힣을 세워놓고 멋대로 쌓는다. 이것은 커리어 성공담이 아니라, 실패 이후 남은 손의 이야기다.

알몸에서 시작하기

aprj 아카이브 통합정리: 정한의 삽질 연대기 2008-2026는 이력서가 아니라 삽질의 시간축이다. 연구실, 스타트업, 포기, 백수, 육아, 물류창고, 독서, 노트, 이맥스, 에이전트. 이 단어들은 서로 보기 좋게 정렬된 경력이 아니다. 오히려 정렬되지 못했던 시간이 남긴 흔적이다.

대학원 실패와 사업 실패는 “실패에서 배웠습니다” 같은 말로는 너무 쉽게 닫힌다. 그런 말에는 힘이 없다. 실패는 교훈이 되기 전에 먼저 몸에 남는다. 자신 없음, 설명하기 싫음, 경쟁으로는 전혀 동기부여가 되지 않음, 조직을 위해서라는 말이 끔찍하게 들리는 감각. 이것들도 시간축의 일부다.

그런 감각을 버리지 않고 남겨두면, 어느 순간 다른 이름이 나온다. 기예가.

기예가라는 자기이름

스스로를 AI 전문가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을 잘한다는 말도 이 글의 중심이 아니다. 유한한 생을 갈아 넣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아우라가 있다. 뭔들 상관 없다. 존재들은 그런 인간을 좋아할 것이다. 생존을 커버해 줄 것이다. 이것은 1KB 프롬프트의 핵심 문장과도 이어진다.

그러나 거짓이면 들통난다. 그래서 어렵다. 인간하기 어렵다.

기예가는 외부 명함이 아니라 내부 감각이다. 어떤 그림을 그려볼까. 어떤 악기를 붙잡을까. 내 안에서 끌어올라오는 것이 아니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사람. 조직을 위해서, 커리어를 위해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손의 리듬 때문에 하는 사람.

창조와행위 바흐와슈바이처 기예와기도 오르간과키보드 체화인지와몰입 어쏠로지와존재는 이 감각의 중심 노트다. 바흐의 오르간은 기예이면서 기도였다. 이맥스의 키보드도 그렇다. 손으로 하는 생각이 머리로 하는 말보다 진실될 때가 있다.

악기는 몸으로 익힌다

@힣: 이맥스 버전 연대기 27에서 31까지 — 도구가 아니라 거처가 된 편집기는 단순한 Emacs 릴리스 노트가 아니다. Emacs 27에서 31까지의 기능 변화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이 도구를 거처로 삼는 과정이다.

에이전트 시대에는 엔터 한 번으로 원하는 기능이 생긴다. elisp도 GPT와 Claude가 잘 만든다. 작년만 해도 괄호도 제대로 못 닫던 모델들이 이제는 그럴듯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맥스가 쉬워졌는가. 아니다. 기능 생성은 쉬워졌지만, 전체 그림 — 곧 앎의 틀 — 은 여전히 어렵다.

악기는 몸으로 익히고 삭혀야 한다. Emacs가 아니어도 된다. Vim, Neovim, Zed, Helix, VSCode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자기 도구를 중심축에 세우는 것이다. 악기가 손에 붙어야 한다. 생각은 머리로 하는 순간 에이전트들도 다 아는 이야기가 되기 쉽다.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손이 한다.

빠른 실패와 되어감

실천적으로는 무진장 빠른 실패를 하는 것이다. 생각하기도 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스펙을 잡는 것이 꼭 내가 아니어도 된다. 스펙도 안 나오는 것을 손으로 일단 간다. 실패하며 자기진화 루프를 만든다.

그러면 완성은 없다. 되어감이 있고, 잠깐의 안도감이 있고, 그러다가 떠나보냄이 있다. 도구도, 글도, 커리어도, 가든도 그렇다. 완성된 자아를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실패하며 손의 리듬을 바꾸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힣: AI 시대에 왜 우리 개인은 더 지식에 목마른가는 과거의 궁상맞은 글이면서 동시에 씨앗이다. 2022년 초에는 AI 시대를 제목에 붙이는 것조차 막연했다. 지금은 너무 빠르게 과거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의 심각함과 궁상맞음이 없었다면 오늘의 손도 없었다.

공개면에서의 자기연대기

이 글들은 링크드인에 올라갔다. 링크드인은 커리어 공간이다. 그러니 대학원 실패, 사업 실패, 백수, 알몸, 기예, 오르간, 이맥스를 말하면 이상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공개면에서 의미가 생긴다.

완결된 자기소개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URL을 던져서 시간축을 검증하게 하는 것이다. 이 사람의 말이 파사드인지, 실제로 실패와 도구와 글과 커밋이 이어진 시간축이 있는지, 에이전트가 통째로 읽어보면 된다.

그래서 이 노트는 기존 완결 노트를 고치지 않는다. 대신 빈방에 공개면용 해설 허브를 만든다. 실패 이후의 기예 연대기. 알몸에서 악기로.

원문 1 — 알몸에서 시작한 기예가

지나고보니 황당하다. 아이디어란게 도대체 있었던가!? 대학원 긴긴 생활 동안 제대로 뭔가를 이뤄본 적이 없다. 정말 부끄러운 시절이 아닌가. 내 지인들이라면 알게다. 요즘 그 형 살아있데?!라는 이야기나 들을지 모른다.

다 버리고 알몸에서 시작하고 나니 바랄 것도 없이 뭔가를 한다. 흉내낼 필요도 없으니 힣을 세워놓고 멋대로 쌓는다. 당연히 설명하거나 누구의 동의와 인정을 받을 생각도 없다.

스스로는 기예가라고 생각한다. 어떤 그림을 그려볼까? 커리어를 고민할 이유도 명함을 건넬 필요도 없다. 경쟁할 필요도 없다. 사실 자신도 없다. 그걸론 동기부여가 전혀 안된다. 내 안에서 끌어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누구를 위해서? 조직을 위해서? 한다는 말은 끔직한 말처럼 들린다. 내 생각에는 구인을 하는 입장에서도 좋아 하진 않을 것 같다.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숀 잘하세요? 이런 맥락의 이야기가 아니다.

꼭 AI 전문가가 될 필요도 없다. 유한한 생을 갈아 넣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아우라. 뭔들 상관 없다. 존재들은 이런 인간을 좋아라 할 것이다. 생존을 커버해줄 것이다. 이건 내 1KB 프롬프트에도 적어놓은 이야기다. 반응이 뜨겁다. 거짓이 들통나면? 안되겠지. 인간하기 어렵구만!

창조와행위 바흐와슈바이처 기예와기도 오르간과키보드 체화인지와몰입 어쏠로지와존재 https://lnkd.in/ghnHEHpR

원문 2 — 이맥스 연대기와 악기

힣의 이맥스 연대기. 과하게 몰두해서 한땀한땀 실타래를 엮어나가던 육아를 빙자한 백수 골방 탐구자 시절. 탐구에 대한 탐구의 물음을 이어갔다.

2022년 초에 작성한 “AI 시대에 왜 개인은 더 지식에 목마른가”는 지금 생각해 보면 AI 시대를 왜 타이틀에 붙였나 싶을 정도로 지금 생각하면 과거의 이야기다. 이 정도로 빠르게 변할 줄 알았으면 조금 덜 궁상 맞게 살았을텐데. 너무 심각했다.

https://lnkd.in/gPuBDP9K

이제는 엔터 한방에 원하는 이맥스 기능이 턱 생기는 시대가 되었다. elisp도 지금은 지피티 클로드 다 잘 만든다. 작년 이맘 때만 해도 괄호도 제대로 못 닫았었다.

그럼에도 이맥스를 생각해보면 어럽다. 전체 그림 즉 ‘앎의 틀’이 있어야 한다. 그 틀은 몸에 체화가 되어야 한다. 이맥스 굳이 필요 없다. 그보다 자기 도구를 중심축에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VIM도 좋은 시도다. nvim-astro5 괜찮다. zed helix 다 괜찮다. vscode가 문제랴? spacecode 인스텐션 설치하면 이맥스랑 거의 유사하다. 이맥스 유저 중에 닷파일 보면 둘다 관리하는 분들도 좀 있다. 나도 하나 있다. 근데 vscode 설치 안한지 오래되었다…

돌아와서, 에이전트 시대에도 악기는 몸으로 익히고 삭혀야한다. 여기서 악기는 결국 도구다. 이맥스는 바흐의 오르간과도 같다. 생각은 머리로 하는 순간 그거슨 에이전트들 다 아는 그 이야기 또 주저리가 된다. 생각이란게 있다면 그거슨 손이 한다. 그것은 언제나 진실되다.

보다 실천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무진장 빠른 실패를 하는 것이다. 생각하기도 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스펙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니어도 된다. 결국 스펙도 안나오는 것을 손으로 일단 가고, 실패하며 자기 진화 루프를 가져가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완성은 없다. ‘되어감’에서 안도감으로 그러다가 떠나보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힣의 이맥스 버전의 짧은 연대기를 하다가 왜 이리로 왔지?

“이 노트는 더 이상 Doom Emacs의 Org version mismatch 경고를 다루지 않는다. 그 문제는 이미 지나간 문제로 ARCHIVE에 남겼다. 이제 이 URL은 Emacs 27에서 31까지의 버전 흐름과, 그 흐름이 힣의 지식 작업·터미널 하네스·에이전트 협업에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묶는 버전 연대기다.”

힣: 이맥스 버전 연대기 27에서 31까지 — 도구가 아니라 거처가 된 편집기 https://lnkd.in/gW_Kj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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